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후은성 Jan 12. 2021

엄마에게 숨겨왔던 것을 들켜버렸다.

그래서 엄마를 또 걱정시켰다.

새해를 본가에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온 날, 엄마에게서 장문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것에 대해서 걱정이 많이 되고, 엄마 본인 탓이 큰 것 같다고.


언제까지고 숨길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가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몰랐으면 했다. 내 마음이 아픈 이유는 오롯이 나의 문제고 여기에 엄마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삼 남매 중 유독 감정적으로 위태로운, 혹은 위태로워 보이는 나의 걱정을 많이 하셔서 내가 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 이래저래 신경을 쓰실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부주의하게 약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바람에 엄마가 내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다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당장 약을 먹지 말라고 하면 내가 잔소리로 들을까 봐 고심 끝에 이메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신 것이었다.


진심을 전하는데 서투른 엄마의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있던 이메일. 그 메일에 답장을 하지 말까, 잠시 고민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엄마를 신경 쓰이게 만들 것 같아서.


나는 2019년 4월부터 정신과를 다니다 회사 때문에 무기력증이 심각하게 와 5개월 만에 치료를 관두었다. 그러다 2020년 7월부터 견딜 수 없이 정신이 피폐해져 다시 다니기 시작했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7개월째 꾸준히 치료를 받는 중이고 현재의 나는 심각했던 불면증과 우울증 증세로부터 많이 벗어나 이제는 선생님과 나의 폐허에 대해 하나 둘 고쳐나가는 중이다.


폐허.


사람은 각자만의 폐허를 끌어안고 산다지만, 나의 폐허는 유독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위로는 언니 하나 밑으로는 남동생 하나와 복작복작 즐겁게 살았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질투한 건지 뭔지 어른들은 유독 나에게 언어폭력을 많이 행사했다.


"너는 실패작이야."


그 말은 어린 나에게 알게 모르게 축적되었고, 나 또한 나 스스로가 실패작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쯤 되면 유년기의 날카로운 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나는 나 스스로가 실패작 같다는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삶에 크게 미련이 없었다.


이게 부모님을 훌륭한 사람을 만났고, 좋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것과는 별개였다.

사실 나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 행복한 사람이고, 화목한 가정을 만나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내 개인의 삶을 돌아봤을 때 사회가 규정짓는 성공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내가 괴로웠다.


그리하여, 나는 21살에 죽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21살이 되어보니까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29살에 죽어야지. 하고 죽음을 미뤘다. 그리고 29살이 여름, 마음속으로 그해 12월 31일에 죽겠다고 결심한 후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때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나는 엄마에게 내가 먼저 죽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엄마가,


"엄마를 자식 앞세운 부모로는 만들지 마라."


이렇게 말하셨다. 그 말에 나는 적어도 엄마가 슬퍼할 일은 만들지 말자,라고 다짐하게 됐다. 그래서 2017년 12월 31일의 자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 다짐 때문에, 나는 내가 한 번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30대를 맞이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30대로서의 삶을 살아내기가 너무 벅찼다.

나는 여전히 부모로부터의 감정적 보호가 필요하고,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 사회에서 규정짓는 '어른'이 안된 기분인데 사회에서는 내가 그저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어른'의 역할을 강요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뭘 어떻게 어른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어른이 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감정적으로 약한 나와, 사회가 규정짓는 30대의 여자의 나.


이 것에 대한 괴리감이 너무 컸고, 그 괴리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나는 '나'로서 살아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에 비해서 돌아오는 결과물은 작고 초라했다. 한 사람의 '어른' 몫을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자꾸만 꼬꾸라졌고, 이 것이 나만의 폐허가 되어 정신과에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엄마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어둠.

나는 이 것에 대해서 정리한 후 엄마의 이메일에 답변하였다. 그리고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이건 나의 문제일 뿐이라고 진심을 담아 덧붙였다.


엄마에게 숨기는 나의 무수한 비밀 중에서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들켜버렸고, 그렇게 나는 또 엄마를 걱정시켰다. 이런 식으로 위태로운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어 나는 엄마에게 참으로 잔인한 딸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이젠 나도 날 잘 모르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