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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Jan 21. 2021

내가 터득한 연인, 남편과 우아하게 싸우는 방법

중도 제 머리는 못 깎지만 1

내가 내 감정상태에 대해 충실하면서 연인과 싸웠던 건 20대 초반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당시에 만났던 사람과는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싸웠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질렀고, 상대편도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싸움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이 된 싸움으로부터 이 것이 서로에게 지고 싶지 않으려는 자존심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이 관계에 점점 지쳐갔다.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싸운 관계의 끝이 뭐가 좋겠는가, 결국 우리는 이별했고 '싸움' 자체에 지친 나는 두 번 다시는 연인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다음에 만난 사람과는 정말 싸우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싸우기 싫어 내 불만을 그저 방치하고 있었을 뿐.  그런 식으로 그 사람과 서걱거리는 연애를 했고, 내 불만이 쌓이고 쌓여 거짓말이라도 사랑해, 가 되지 않을 때쯤 우리는 이별했다.


그때 했던 연애가 너무 버거웠다. 그리고 2년의 연애 휴식기를 가진 후에 만났던 사람. 나는 이때부터 이성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상대에 대한 불만을 절대로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고, 상대가 듣기 싫은 소리 하는 것을 10분 이상 넘기지 않았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정확하게 정리해서 요목조목 말을 했고, 이 것이 습관이 되어 그 뒤로는 적절하게 불만도 말하고 상대와 맞춰가며 연애를 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연애를 할 때 감정적으로 흔들려서 위태로운 순간이 있긴 하지만, 내가 이성과 맞춰가는 방식이 내 주변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하여서 '중도 제 머리는 못 깎지만'이라는 이름의 연애 심리 칼럼을 쓰기로 결심했다.






CASE 1.


내 친구는 결혼 N연차 유부녀이다.

남편이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있고, 직업 특성상 '이성적 사고방식'을 강조하고 명령조로 친구에게 말하는 타입. 대화의 주제는 주로 본인이 '건실'하다고 착각하는 것들. 예를 들면 경제, 주식 같은 것. 그리고 그 외의 대화 주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반면 내 친구는 모든 대화 주제를 좋아하는 편. 남편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길 바라는 타입. 감성적인 타입. 말을 이쁘게 하는 타입.


이 둘의 성향이 극과 극이어서 늘 싸움이 났고, 가끔 남편이 친구에게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들을 뱉으면서 친구가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친구는 '남편이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나?'라는 고민과 함께 남편의 말들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친구를 가장 화가 나게 만들었던 남편의 말은,


"너는 너무 극단적이라서 말이 안 통해."


가만히 친구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싸움의 98%가 남편 측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싸움을 할 때도 상대방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언어를 쓰면 안 되는데, 남편은 내 친구를 말로서 상처 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같이 보였으니까. (여기에 자세히 쓰진 못하지만, 내가 듣기엔 친구의 남편분이 칼 날 같은 말로 내 친구를 괴롭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친구로서 화가 났다. 본인-남편-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친구를 이유 없이 무시하는 게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 '이성적인' 어휘로 내 친구가 남편에게 되받아치게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과 말도 섞기 싫다는 친구를 설득해 장문의 카톡을 작성하도록 했다.


'오빠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난 가끔 오빠가 날 부인이 아닌 직장 후배처럼 대한다는 기분이 들어. 오빠에게도 여러 번 말했는데, 오빠는 늘 오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날 감정적으로 대처한다고 말했지.

근데, 욕을 하면서 아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일장 연설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상처 받는지 오빠는 잘 모르는 것 같아.

나 완벽하지 않아. 그리고 오빠도 완벽하지 않지. 이 것에 대해서 서로 인정하고 다른 점에 대해서 인정하고, 만족할만한 방향성에 대해서 대화로 합의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오빠는 오빠가 옳다고만 말을 해. 이게 대화일까? 나는 이거 명령이라고 생각해.

오빠가 나와 싸울 때마다 나를 비하하고, 깎아내리는 것에 실망하게 되네.

자꾸 이런 게 쌓이다 보면 나도 오빠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부부관계라면 이게 맞는 걸까? 오빠도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오빠와 소소한 행복에 대해 나누고, 그 가치를 마주 보며 웃고 기쁘게 살아가고 싶어. 근데 그것을 제 손으로 망치고 있는 사람은 난 오빠라고 생각해. 내가 소소함에 대해서 오빠와 공유하고 싶어 할 때마다 오빠는 나를 한심스럽게 대했잖아. 아니야?

오빠, 나도 오빠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노력해볼 테니 오빠도 내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부부는 한쪽의 색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닌 서로의 색을 존중하며, 아름다운 색으로 섞일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빠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거 나 알아. 그래서 나도 오빠도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시간의 끝에,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길 희망할게.'


이렇게 보내라고 말을 했고, 그리고 친구에게 덧붙였다.


이성과 싸움을 할 땐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의 언어를 쓰되 도중도중 나는 너 때문에 이런 점이 아팠어, 너라면 어땠을까? 하면서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또한 여자들은 '믿음'을 '사랑'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믿음'은 경고로 써야 한다고. 그리고 화가 난다면 그 자리에서 내지르지 말고,


"나 당신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해, 우리 휴전하자."


라고 말을 하고 화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 뒤에 다시 말을 하라고.


또, 친구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었다.

그들의 관계에는 재협상 (결혼 전과 결혼 후에 성격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존재하지 않았고, 친구의 남편은 서로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인정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 너희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게 서로의 성격에 대한 재협상이라고 생각해. 서로 달라짐을 받아들이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EX. 나도 최선을 다해서 가정을 잘 꾸리며 오빠의 신뢰를 쌓아볼게, 오빠도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폭언을 안 해주었으면 좋겠고 내가 조그마한 성과를 보이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칭찬해주었으면 좋겠어. 그럼 나는 오빠의 칭찬을 받고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 달라진 속성을 인정(포기) 하되, 더 큰 사랑과 신뢰를 받겠다, 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 같아.


말은 생각보다 무서워.


그래서 사람은 한 번씩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서 서로의 관계를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는 멘트들이 필요한데, 지금 네 남편분이 너에게 언어폭력을 쓰고 있잖아? 이게 장기화가 되면 정말 네 자존감은 다 부러져서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될 거야. 나는 그게 제일 무섭고 걱정돼. 

그러니까 이젠 네가 남편의 말에 상처 받을 때마다 힘주어서 오빠에게, "그만!"이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너도 남편을 어떤 대상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

남편을 보호자로 인식하는 건지, 아니면 남편이 내가 가장 힘들 때 묵묵히 위로해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인지 생각해봐. 근데 네가 남편을 보호자로 설정하는 경우,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추상적인 것들, 그리고 사소한 것 하나도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것들을 해주길 원하는 과한 기대감이 생겨. 남편에게 바라는 것들을 최대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네 남편분도 지금 너를 내 명령을 듣는 사람으로 설정해두신 것 같아. 그러니까 네가 군말 않고 본인의 말을 따라왔을 땐 기뻐하고 네가 반항하기 싫어하면 화를 내는 것 같아.

둘 다 이걸 고쳐야 할 것 같아.」


친구는 알겠다고 했고, 나의 말을 적용시켜서 며칠 뒤 무작정 화만 내는 남편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관계의 방향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며 고맙다고 말을 했다.






연인과 싸울 때 감정 컨트롤을 하지 않고 밑바닥을 전부 드러내 보이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곤 하는데, 웬만하면 그렇게 싸우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싸우다 보면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수준까지 가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습관적으로 싸우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저 위에 있는 글들이 다소 어렵다면 이 것만 기억하면 된다.


싸울 때 연인이 직장 상사라고 생각해라. 그러면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게 된다. 그리고 싫은 소리는 사랑하는 이의 입에서 나오더라도 듣기 싫다. 싸움을 30분 넘기지 말고, 싸우고 나면 뒷 끝을 남기지 마라. 그리고 싸움의 끝은 포옹과 함께, "나도 노력할게."라고 말하며 내 말로 상처 입은 상대의 마음을 다독거려라.


처음으로 써 본 연애 칼럼.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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