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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Feb 23. 2021

쓸모없는 나에 대한 비밀

나는 날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해

애인으로서 남자를 사랑하는 것과 친구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대체 뭘까.


조금 이상한 소리로 들릴진 모르겠지만 나는 애인은 '언젠가' 헤어질 관계라고 생각하는 반면 친구는 헤어질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이유 때문에 친구들을 애인보다 잘 챙기는 편인데, 이렇게 된 원인을 설명하자면 나의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랑이 늘 한결같다면 좋겠지만, 사랑의 크기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는 나라서 상대를 향한 나의 사랑의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헤어졌고 마찬가지로 상대 또한 나에 대한 본인의 애정이 변했다고 느끼면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애인으로부터의 이별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친구 관계에서는 내가 친구를 향한 사랑이 줄거나 친구가 나를 향한 애정이 줄어들었을 때,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적정 거리를 유지하다가 서로의 애정이 돌아오면 관계를 다시 소중히 대하면 됐었다. 20대부터는 친구와의 이별은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연애에는 늘 끝이 존재했고, 친구 관계에 있어서는 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끝이 존재하는 관계보다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가 더 소중하고 애착이 갔다.


그러다 보니,


"언니는 생각보다 남자 친구들에게 무덤덤한 편인 것 같아요. 감정 표현에 있어서 선이 있다고 해야 하나? 언니는 외로움도 잘 타는 편인데, 그 사실을 언니 애인에게는 잘 공유하지 않잖아요. 언니의 본모습을 드러내면 좋을 텐데."


이런 말도 참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친구는 나와 이별하는 대상이 아니지만, 애인은 나와 이별하는 대상이니 뭔가 끝을 정해두고 적당히 나를 내보이는 것 같아."


라고 답했고, 그럴 때면 친구들은


"언니는 이별을 늘 대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라고 말했다.

사실, 이별에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건 나도 상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최근 친구를 만나 연애, 인연에 대한 대화가 나왔다.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난 연애는 의리인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동의했다. 그러며, 첨언했다.


"맞아, 나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해. 내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날 떠나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 사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지만, 결혼의 끝은 이혼일 수도 있잖아. 결혼해도 나는 여전히 상대가 날 버리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은 존재할 것 같아. 그래서 연애도, 결혼 생활도 의리가 가장 중요한 거지. 나는 생각보다 상대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아. 나는 상대가 내 옆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고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위로를 받는데, 생각보다 이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남 여 사이는 권태기를 이유로 서로에게 질리면 끝이 나잖아? 나는 익숙함에서 오는 소중함이 절대적인 사람인지라 그런 이별을 겪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나는 지난 연인들에게 내 곁을 내어주고 싶지 않아 적당히 대했던 것 같아. 상대에게 나의 익숙함을 내어준다면, 그 익숙함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처절하게 무너질 것 같거든."


우리는 서로의 의견에 동의를 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나는 생각보다 강한 척하려 드는 약한 사람인지라 사람 관계에 있어서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사랑해줘. 내가 이쁘든, 못생겼든, 말랐든, 뚱뚱하든, 착하든, 못됐든, 냉정하든, 따뜻하든,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그 어떤 형태의 나라고 하더라도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 줘. 내 곁에 늘 있겠다는 확신을 줘.


나에게 사랑이란 뭘까. 이렇게 약하고 연약한 나도, 과연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우습게도,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내 옆에 묶어두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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