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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Apr 03. 2023

십천, 십 시 열 분, 일분의 삼 (ver.1)

당연한 게 꼭 당연한 걸까?

십천, 십 시 열 분, 일분의 삼을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미국인 남편과 제 아이는 가끔 이렇게 무늬만 한국말을 할 때가 있어요.



   첫 번째 “십천”에 대한 얘기를 해볼게요. 제가 남편에게 숫자 읽는 법을 가르쳐 줄 때 10,000을 읽어보라니까 자신 있는 목소리로 “십천!” '띄용!!! 이게 뭔 소리지?' 당황은 접어두고!!!

아직 “만”이란 단위를 배우기 전이라 10,000 = ten thousand 말 그대로 십+천.

영어는 숫자를 세 자리로 끊지만, 우리말은 네 자리로 끊어 읽으니, 우리말엔 없는 말을 창조하신 거죠. 자기가 아는 한국말을 총동원한 대답이지만, 우리는 쓰지 않는 무늬만 한국말!


   두 번째, 십 시 열 분! “왜 열 시 십 분은 맞고 십 시 열 분은 안돼?”냐는  아들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해줄 수 없었어요. 전 여태껏 1도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렇게 썼거든요. 왜 시간은 서수고 분은 기수로 말해야 하는지, 그게 뒤바뀌면 왜 틀리는 건지 아무도 제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 궁금해 본 적이 없어요.


이쯤에서 챗GPT에게 물어보니 “시간은 24시간 기준이므로, 서수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3시"라고 말할 경우, 3번째 시간을 의미하므로 "3rd hour"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분은 60분 기준이므로, 분은 기수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20분"이라고 말할 경우, 20분이라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 60분 중 20번째인 분을 의미하기 때문에, "20th minute"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챗GPT의 대답이 저만 이해 안 되는 걸까요?. 24시간은 왜 서수가 맞죠? 영어로 시간을 말할 땐 서수를 쓰지 않아요! 그리고 60분이 기준이면 왜 기수가 일반적이라는 건지. 챗GPT 근본적인 답을 해주지 않는군요! 시간 말하는 법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아는 분 계신가요? 답을 못찾다가 국립국어원에서 검색해보니까  "하나 둘 셋~", "일 이 삼 사~" 모두 기수사이며, 전자는 우리말 기수사, 후자는 한자어 기수사래요. 기수 서수가 아니구요. 어쩐지! 서수는 첫번째 두번째 이래야하는건데~  "수가 작을수록 고유어 수로, 수가 클수록 한자어 수로 읽는 경향이 있다."라고 나와 있네요. 이제 명쾌하게 아이에게 말해 줄 수 있겠어요.


   마지막 일분의 삼이라고 말한 이유는, 영어로 1/3은 분자 먼저, one third거든요. 그래서 아들 녀석이 그걸 그대로 옮겨와 일분의 삼이라고 한 거랍니다. 이번엔 반대로 우리말은 모두 기수로 분수를 말하는데, 영어는 분자는 기수 분모는 서수네요.


수학 포기자인 제가 그냥 지나쳐도 될 숫자 얘기를 왜 이리 장황하게 얘기하는지 궁금하시죠?

제가 앞에서 무늬만 한국말이라고 했던 이유는, 이 두 남자가 한 말속에 영어식 사고가 그대로 녹아나 있기 때문이에요. 세 가지 예시 모두 제겐 너무나 당연한 거라 다르게 쓸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영어가 더 편한 남편과 아이는 다르게 얘기하더군요. ‘왜 저렇게 말하지?’ 곱씹어 보니,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내게 당연한 게 다른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당연하게 생각한 모든 것을 한 번쯤 비틀어 보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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