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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Apr 09. 2023

스파이 코코

작가수업 _ (1학기 중간과제)

 끝이 뾰족한 컴퍼스가 손에 들려있었다. 하필 그때 건이가 책상 위로 몸을 구부렸다. ‘남사스럽게 뭘 저리 꽉 끼는 옷을 입은겨?’ 쫄쫄이 청바지에 뽕실뽕실한 궁둥이가 유난히 도드라졌다. 왜 그랬을까? “콕” 찔러보고 싶었을까? 아니, 생각은 죄가 아니지. 그런데 난데없이 “콕”이 아니라 “콱”인 거야? 정신 차려보니 이미 건이의 오른쪽 궁둥이에 컴퍼스가 박혀 있었다. 1cm는 족히 들어갔겠다.


   “아~~악!! 아이 시이~~ 발 어떤 새끼야!!” 건이의 포효가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아! 까비! 좀 더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들려던 찰나, 죽빵이 날아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은 나는 피~욱 꼬꾸라졌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에워쌌다. 건이의 이름을 외치며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고건! 고건!” 건이는 그 소리에 흥분해서 흠씬 두들겨 팼고, 나는 만신창이가 됐다.


    안 그래도 기 못 펴고 사는 쭈구리인데, 인기 폭발 반장 궁둥이를 아무 이유도 없이 찔렀으니… 그 후로 애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날아오던 건이의 주먹을 재빠르게 낚아채서 업어치기 했다면? 백 미터를 이십오 초에 뛰는 운동 젬병이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유도, 태권도, 격투기 온갖 무술을 배워 이 굴욕을 씻어내리라!’ 다짐했다. 푸르뎅뎅한 얼굴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얻어터진 꼴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꼬락서니 좀 보라고, 학교에서 더는 안 맞고 싶다고 무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밥 먹고 뭔 쉰 소리냐고, 별 씨 잘 때 없는 소리 말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고 혼만 났다. 왕년에 태권도 학원에 다녔던 작은오빠가 옆에 있길래 태권도 가르쳐 줄 거냐 물었더니 저리 꺼지란다. 하! 도움이 1도 안 되는 가족이다! 가족이 맞긴 한 건가?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게다. 맞다! 성룡 아저씨가 있잖아! 오래전에 봤던 취권을 무한 반복 재생하면서 똑같이 따라 하기를 6개월. “파밧! 팟 팟 팟! 취칙~~ 췩 췩 췩!” 움직일 때마다 바람 소리 흩날렸다. 팔다리는 원하는 대로 움직였고 몸은 깃털보다 가벼웠다. 나만 보면 툭툭 거시는 눈엣가시 같은 작은오빠를 날아 차기 한방으로 보내버렸다.


   건이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공중제비 돌기 삼 회전을 선보였다. "나 코코! 더 이상 예전의 쭈구리 아니거든!"’ 팔딱팔딱 양발을 번갈아 뛰고 오른손을 까딱거리며 “야! 고건! 덤벼! 드루와! 드루와!” 공부만 잘했던 건이는 또라이로 변한 나를 보고 그 큰 눈이 더 똥그래졌다. “파밧! 팟! 팟! 팟!” 공격 태세를 미처 취하지 못한 건이를 이단 옆차기로 날려버렸다. 아이들이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이번엔 내 이름을 외쳤다. “코코! 코코!” 학생회장이 된 건이를 처음으로 이긴 날이었다. 우레와 같은 함성! 피가 끓어올랐다.     


갑작스럽게 아빠가 미국 메릴랜드주로 발령이 나면서, 오 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아빠는 여태껏 공부에 별 뜻이 없던 나를 사립 초등학교로 보내고 싶어 했다. 자녀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명문 사립 초등학교인 글레넬그 컨트리 스쿨로 전학을 가게 됐다.


‘초등학생이 웬 교복인 거야? 목 졸라매는 이 넥타이 뭔데?’ 전학 첫날부터 입을 댓 발 내놓고 학교로 갔다. 안 그래도 기분이 영 거시기한데, 못생기고 덩치가 큰 남자애들이 몰려왔다. 그런 넙데데한 등치를 맨눈으로 첨 봐서 놀라 자빠질뻔했다. ‘외국인은 다 날씬하고 잘생긴 거 아니었어?’ 중얼거리는데, 그중에 젤 뚱뚱한 놈이 "야! 너 꼬맹이 일로 좀 와봐" 시비를 털었다. "니가 와라!" 한마디 던졌다가 출렁거리는 그놈 뱃살에 몸이 쥐포처럼 깔렸다.


   '어허~ 이 새끼들 봐라! 또라이 짓 그만하고 이제 조용히 살려는데…’ 눈썹을 쓱쓱 두 번 쓸어주니 성룡 아저씨로 빙의됐다. 찌질하고 못난 놈들을 순식간에 샤샤삭~ 정리했다. “밤톨만 한 애가 쒸~웅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그 애를 건드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라”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우등생이지만 운동을 못하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나는 호신술을 알려줬고 걔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교과목 내용까지 다 가르쳐줬다. 반년 만에 ESL 수업에서 탈출했고 학교 성적은 쭉쭉 올랐다. 중학교 진학 후에 일등을 놓쳐본 일이 없다. ‘나 진짜 난 년인가?’


   스물세 살에 메릴랜드 범죄심리학과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남들은 십삼 년은 족히 걸릴 일을 십 년 만에 끝냈다. 이론은 빠삭하니, 이제 실전이다.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 더블 오 세븐의 제임스 본드! 그들처럼 전 세계를 누비며 비밀 임무를 수행할 특수요원으로 거듭나리라! 버지니아주 콴티코 FBI 아카데미로 향해 운전대를 돌렸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끝이 뾰족한 컴퍼스를 주머니에 넣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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