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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원망과 후회

고부사이

by 꼬솜

- 어머님 산소마스크는 언제까지 해야 해?

- 간호사 말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해야 한대.

출근길에 남편에게 어머님 안부를 물었고, 나를 데려다준 후 어머님 뵈러 간다고 했다.


- 어머님, 잘 뵙고 왔어?

- 응, 오늘은 스테이크가 드시고 싶댔어.

- 스테이크 드실 수 있어?

- 아니지. 그래도 평소보다 말씀도 더 잘하시고 또렷하셨지.


남편이 퇴근하는 나를 픽업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님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뉴헴프셔에 사는 아주버니 전화가 울렸다. 시어머님 사망 소식

철커덩! 남편과 내 심장이 닫혔다.


차를 돌려 시어머님을 모셨던 사설 기관으로 갔다.

남편은 아침에 어머님을 뵙고 왔지만...

엄마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하다며, 이미 파래지기 시작한 손을 붙잡고 울었다. 난 그저 남편 어깨를 토닥이며 보탬이 안 될 "네 잘못 아니야"를 반복할 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형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편과 나는 당황했다. 간호사에게 장의업체에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지금은 돌아가라고 했다. 유품 정리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며


8년 전 남편이 시어머님을 뵈러 미국으로 왔을 때 헤어지면서 남편에게 했던 말

"내가 죽기 전에 널 또 볼 수 있을까?" 그 말 한마디로 우리를 미국으로 불러들인 사람. 낯선 곳에서 우리 삶은 밑바닥까지 떨어져 더 이상 올라갈 여력도 없는데, 난 시어머니께 '남편 등골 빼먹는 년'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쌓인 오해와 원망으로 한동안 어머님을 뵈러 가지 않았다. 로플린에서 베가스로 모신 후에도 딱 한번 뵙고 그 후로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산소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 날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뵈었다.


내 선택과 결정, 그 후회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돌렸다. 그리고 또 이렇게 후회를 한다.



백일 쓰기/ 예순일곱째 날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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