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딱 너 같은 거

나도 내 맘처럼 안 되는 걸, 자식이라고 될 리가...

by 꼬솜

아침 댓바람부터 자고 있는 강호에게 소리를 빽질렀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생수병, 콜라캔,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가지들, 나이도 어린놈 방에서 나는 홀아비 냄새 등등. 방 치우라고 그렇게 울부짖을 때마다"알았어, 했어." 시전 하며 짜증을 내는 놈. 깨워달래서 오래간만에 방문을 열어봤는데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8년째 같은 소릴 하는 나나, 고칠 생각 없는 강호. 만나지 않을 평행선 같은 싸움 또 시작.


OCD(강박장애)가 있는 애 같다는 소릴 들을 만큼 지저분한 건 못 보는데, 아들놈은 너저분 그 자체니, 부딪칠 수밖에. 그래서 더더욱 강호방 근처에 가지도 않고, 강호가 쓰는 화장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아침에 문을 열고 방꼬락서니를 보고 화를 못 참고 꽥 소리가 먼저 나왔다.


아들이 속을 뒤집어 놓을 때마다, 26년 전에 이별한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딱 너 같은 거 낳아서 고생해 봐야"란 소릴 해댔다. '딱 나 같은 거' 그게 뭘까. 엄마랑 딱 스무 해 같이 살았는데, 엄마는 왜 날 그리도 싫어했을까. 아빠에겐 미안함이 한가득인데, 아직도 엄마를 향한 원망은 담을 그릇조차 세상에 없다. 모질고 모질게 나를 밀어내던 엄마에게서 "딱 너 같은 거"란 말이 왜 상처였을까. 난 뭘 그리 잘못했을까.


아침부터 푸닥거리를 하고, 엄마가 했던 말이 떠 올라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오후쯤 강호가 톡을 보냈다. "도넛 사 왔으니 드셔" 크리스피크림 좋아하지만, 잘 사 먹지 않는 걸 아는 강호가 미안하단 말을 하는 거였다. 평소엔 우리가 퇴근해도 잘 나와보지도 않는 녀석인데, 오늘은 무슨 일로 거실에 나와 말을 걸었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터라 대거리 안 했더니, 이번엔 강호가 날 불렀다. "엄마 도넛 먹어요." 듣는 둥 마는 둥 투명 인간 취급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화해(?) 시도를 두 번이나 한 강호에게 화가 더 났던 건,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더즌을 두 박스나 사 와서였다. 그냥 고마워. 잘 먹을게 딱 이 두 마디면 끝날 일이었다.


엄마가 악담 퍼붓듯 퍼부었던 '딱 너 같은 거' 낳았다고, 이 놈 낳고 내가 미역국 먹었다고 한탄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나. 내 맘도 내 맘처럼 안 되는 데, 자식이라고 될 리가 있나. 강호는 강호 나름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걸 안다. 엄마에게 난 ' 딱 너 같은 거' 낳지 않았고, '너 보다 나은 거'를 낳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글쓰기 모임 이번 주 주제가 '초능력'이었다. 초능력이 있다면 돌아가신 엄마를 5분만이라도 보고 싶다던 글에 난 아직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단 댓글을 남겼었다. 초능력이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졌다. "많이 힘들었지? 많이 외로웠지? 이제야 알아 미안해" 그렇게 화해하고 싶어졌다. 강호가 더즌을 두 박스나 사온 마음을 알 것 같다.



백일 쓰기/ 아흔아홉째 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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