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탈랩에서 날 트레이닝 시켜주는 열혈청년 에릭은 스물아홉이다. 2018년에 어학연수차 미국 왔다가 팬데믹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없었단다. 어쩌다 5년째 반강제로 미국에서 산다는 그. 이 일을 2년째 하고 있고, 지난 일 년간 여섯 명을 트레이닝시켰지만 두어 달쯤 되면 다들 나가버렸다고 가르치기 싫다며 첫날부터 날 별로 반기지 않았다. 힘들어서 그만둘 거면 빨리 그만두면 좋겠다며 그간 속앓이를 표출했다.
같이 근무하는 풀타임 테크니션인 우디는 삼십 대 중반으로 알고 있다. 우디가 요즘 학교 시험이다, 다른 잡이다 뭐다 해서 자꾸 빠지고, 이번주부터 나도 골프클럽 리오픈 준비로 수요일에 일찍 퇴근해야 하는 상황이라 모든 일이 에릭에게 몰리는 중이다. 그 와중에 우디가 자기 없을 때 어쩔 거냐며, 이렇게 느려서 되겠냐고 에릭을 질책했다. 에릭은 일이 점점 많아지는데 쥐꼬리 같은 월급은 올라갈 생각이 없다며 그만둬야겠다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우디는 MBTI가 'T'일 듯. "네가 그리 선택하면 어쩔 수 없지"란다.
우디 마음도 이해되고, 에릭 마음도 이해됐다. 우디는 자기가 자리를 비운다고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고, 에릭은 미친 듯이 일하는데, 알아주지 않고 질책만 해대는 선배가 미웠고, 초과 근무 수당도 주어지지 않는 회사에 대한 불만이었을게다. 풀타임이지만 병가와 휴가 그리고 그 어떤 베니핏도 없는 이곳에 뼈 갈아 일하는 기분 아니었을까.
에릭과 나는 딱 강호 나이만큼 차이 난다. 트레이닝시켜 주는 선생님이기에 덩치 큰 이 열혈청년에게 늘 존댓말을 하지만, 오늘은 더 아들 같은 맘이 들었다. 타국에서 고생하는 전우애 때문인가. 뾰로통하게 입을 내놓고 신세한탄 하는 에릭이 짠하면서도 이뻤다. 한국 가서 사업할 때 사람 필요하면 꼭 자길 불러 달란다. 4~5년 후나 될 거라니까 그때까지 자기가 방황하면 자기를 좀 데려다가 써달란다. 베이킹 클래스 하기 전에 데모로 만든 디저트를 가져다주면 맛있다고 제과점 열라며, 자기가 직원 하겠다며 자가 취업 시키는 에릭
영주권이 없어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우디와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은 있지만 아직 수입이 많지 않아 돈을 더 벌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에릭. 한국으로 돌아가도 뾰족한 수가 없을 수 있다. 정규직으로 회사에 취업하지 않는 한 휴게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업주들은 15시간으로 시간을 쪼깨서 파트타이머를 고용한다고. 최저임금으로 15시간을 일하고 지낼 수 없기에 쓰리 잡은 기본일 거라고. 많은 한국 청년들이 그렇게 살아내는 중일 거라 말했다.
나의 이십 대 시작은 1997년이었다. 26년이 흐른 2023년의 이십 대와 삼십 대 청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돈 벌기 너무나 쉬워졌다는, 이보다 더 쉬울 수 없다는 외침은 사방에서 들려오고 영 앤 리치는 SNS에서 그들의 부를 만끽한다.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한 없이 초라하고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우울증에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상을 살아내는 대부분 청년들 삶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 달 반째 풀타임으로 일하는 열여덟 강호도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이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전쟁 치르듯 살아간다. 나아지겠지, 좋아지겠지 최면을 걸면서. 살아내다 보면 변두리에 있는 우리의 삶이 정말로 나아질 날이 올까. 좋아질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