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낭랑 18세

단단해질 시기 잘 버텨내렴

by 꼬솜

석 달 열흘 만수르 마냥 돈을 써재끼다 뜬금없이 투잡을 뛰어야겠다는 강호. 한국으로 함께 돌아가고 싶으면, 대학 졸업장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맘이 동했나. 대학 가기 전까지 쉬는 날 없이 일해도 세금, 월세, 차 유지비, 용돈 빼면 2천만 원이 다네. 이 걸로 어찌 대학 졸업하냐 물었다. 그 돈이면 2년 치 학비니, 나머진 장학금 받아 해결하라니까 그건 자기와 안 맞는단다. 딜할 줄 아는 놈. 대학 진학과 동시에 월세 전액 감면, 학비 일부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4월, 골프클럽을 떠났다가 총괄 셰프 배려로 주 4회 나랑 동일한 스케줄로 이번주부터 복귀. 카풀에 대한 감사 표시로 한 달에 한번 주유비 내주겠다. 내일 기름 넣으러 가쟀다. 괜찮다길래 사양하는 줄 알았으나, 반이나 있어 주유하기 직 이르단 말.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눴던 2023년 10월 12일. 강호는 생애 최초 투잡 세계에 발을 들다.


예전 포지션은 이미 다른 친구가 채웠기에 당분간 프렙 담당. 이틀 내내 칼질하느라 검지 손가락 끝에 물집이 생겼다. 물집은 굳은살로 넘어가는 과정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해가 중천이 되고도 남을 오전 11시.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며 손을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하얗게 농이 앉은 데다 손가락이 땡땡부어 있었다.


출근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병원에 갔으면 하는 아이의 마음을 뒤로하고 출근 독촉하는 내 맘도 편치 않았다. 브레이크 룸에서 손가락과 핀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물집을 터트리니 새하얀 농이 한가득 나왔다. 병원에 간들 별다른 조치 없이 밴드하나 붙여주고 몇 백 불 청구할게 빤하기에 응급조치 하면서도 염증이 더 심해지면 어쩌나 걱정만 한 바가지.


오랜만에 아이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여기저기 굳은살 박히고 찢기고 긁힌 손. 일회용 기저귀 안 사고 천기저귀 빨아 입히며, 유기농 식재료 사다가 빵과 과자 만들어 먹이며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하나밖에 없는 내 핏줄. 미국 와서 이리 모질게 인생 쓴맛을 보게 해야 하나. 뭐라 설명 못할 울분을 삭이며 환부를 꾹 눌러 나머지 농을 빼냈다.


땡땡해져 손가락이 구부러지지도 않는다고 볼멘소리 하는 아이를 굳이 출근시켰으니, 가혹하기 그지없는 엄마다. 좀 불편하다고 쉽게 결근하지 않았으면 했다. 몸 축내며 일하란 말은 아니지만, 책임감의 무게를 알기 바랐다. 먹고사는 것.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위대한 일임을 체득하길 바랐다.


당분간 머리 쓰는 대신 몸 쓰기로 한 아이. 온몸으로 부딪쳐 치열하게 살아낸 이 시간이 삶을 비옥하게 만들 것임을 분명히 안다. 때론 툴툴거려도 용케 힘든 일을 버텨내는 아이. 무탈히 잘 자라줘 더 고마운 아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아이. 이 아이가 오롯이 홀로 설 날이 오길 바라며 고되게 훈련 시키고 더 가혹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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