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9년 전 식목일에 떠난 아버지와 한때

by 꼬솜

나흘간 조퇴와 병가를 반복하며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이번 몸살은 유독 머리가 아파서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 여기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예정된 서평회가 생각났다. 새벽 1시쯤,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욱신 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읽다가 오한이 들어 침대에 들었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9년 전 식목일에 떠난 아빠가 건강한 모습으로 꿈에 나왔다. 시골집 텃밭에 아빠가 길러낸 오동통한 토마토, 시금치, 파, 처음 봤던 콩꽃, 한아름 넘는 팽나무까지. 파를 뜯어 파전도 부치고, 시금치 뜯어다가 시금치나물도 무치고, 장에서 사 온 전복을 버터에 노릇노릇 굽고 있었다. 어느새 아빠는 부엌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다. 전복을 떼어주자 아빠는 아기새처럼 받아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나도 모르게 잊혀져버렸던 아빠. 두 번째 발병한 암과 치매로 유머감각은 고집불통으로 변했고, 세상 누구보다 깔끔했던 양반이 자기 몸에 분변을 발라댔다. 1년 가까이 병간호를 하며 긴병에 효자 없단 얘기를 실감했다. 패혈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마음이 달라졌다. 처음엔 살아있게만 해달랬다가 너댓 번쯤 되니, 이젠 나 좀 살려달라는 소리로 바뀌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해방일지가 쓰고 싶었을 때쯤, 30킬로 그램도 안 되는 야윈 몸으로 세상을 떠났다.


몸살 덕분에 그립던 시절의 아빠를 만나게 된 걸까? 책 덕분에 꿈속에서라도 보게 된 걸까?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퇴근 후에 찬찬히 나머지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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