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장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깊이 있게 말할 수 있니?

by 꼬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영화,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히 떠오르는 작가도 영화도 책도 없었다. 이런 참을 수 없게 가벼운 영혼이라니. 그러다 아득했던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이름 '장. 정. 일'과 짐모리슨이 이끌던 '도어즈', 20대 초반에 장정일이 썼던 책은 죄다 끌어다 읽었다. 도어즈 앨범을 다 사서 밤새 들었다. 책과 영화를 분석하며 봤던 그때. 신문에서 사설만 모아 혼자 논제를 반박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강의도 다 빼먹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던 그때. 전공도 아니었던 사회주의 서적, 정신분석학 서적을 쌓아 올려 논문이라도 쓸듯 노려보며 곱씹었던 그때. 남들이 뭐라 하건 그저 책이 좋았던 아이였는데.


언제부터 이리 새털같이 가벼운 사고로 중무장한 거지? 읽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책을 덮어버리고. 단편 수상작은 봐도 봐도 이해가 안 되고, 시를 봐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고, 저변에 깔린 사고는 생각하기도 싫고. 누가 나이 들수록 지혜로워진다고 했던가. 갈수록 모르는 것 투성인데.


글을 진짜 쓰고 싶긴 한가? 책을 진짜 좋아하긴 하나?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지? 뭐였지?

강의 듣고 슬퍼졌다. 이제껏 가슴에 콕 박히는 영화하나 없다니. 깊이 있게 말할 책 하나 건지지 못했다니.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제부터 만들어보기로. 좋아할 작가, 영화, 책을 찾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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