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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Dec 04. 2023

이제 다음 손님은 없다고

편혜영 [소년이로]  중에서 <다음 손님>을 읽고

   딱 십 년 전, 아흔둘 아빠는 담도암 말기에 치매도 함께 앓았다. 간병인을 쓰지 않고 아빠를 돌보면서 몸도 마음도 부서졌다. 나만 부서진 게 아니라 아이도 남편도, 온 가족이 서서히 부서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모질어졌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병원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입을 막은 채, 끅끅대며 눈물 훔치던 내가 떠올랐다. 감당치 못할 일로 살아내야 할 날이 고단해 차라리 이대로 사라지길 바랐다. 친정아버지, 나, 내 아이는 소설 속 외할아버지, 아버지, 나와 중첩됐다.

   2013년 설 무렵, 요양원이 아닌 셋째 집에서 설을 나고 싶었던 아빠는 요양원에서 탈출하려고 벽에 머리를 여러 차례 박았다. 셋째는 아빠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고 허름한 여관 달세방에 버렸다. 제주에 살던 아빠의 세 자식은 늙고 가난해진 아빠를 거두지 않았다. 육지에 살던 막내인 내게 굳이 연락했다. 소설 속 어머니의 그 남자처럼 네 아비를 거두라고.


   햇살이 따갑게 비치는 한낮에도 눅눅하고 어두침침했던 그 공간, 냄새나는 이불을 돌돌 말아 앉아 눈물까지 말라버린 슬픈 눈으로 나를 보는 아빠. 만감이 교차했다. 그 좁고 더러운 달세방에서 생을 마감하게 둘 수 없어 아빠가 지낼 수 있는 집을 찾아 헤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 받아주는 집주인은 없었다. 남은 생은 집 걱정하지 말고 편히 살라고 아이 돌 반지까지 탈탈 털어 아파트를 마련했다.

   아빠가 아파트로 입주하고 반년이 채 안 됐을 때, 새벽녘에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지하 주차장이 물바다가 됐다고 말이다. 물 흔적 따라와 보니 여기였다. 들어와 보니 욕실에 물이 틀어져 있었다. 하수구가 이것저것 잡다한 걸로 막혀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것 같다는 상황 설명과 함께.

   퇴사 후에 거주지를 서울에서 원주로 옮겨 공부방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예정된 수업을 바로 조정할 수 없었다. 일정 조정하고 내려갈 테니 지금 바로 아빠에게 가달라고 사촌에게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 얼굴색이 너무 까맣다고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고 메시지가 왔다. 응급실에 있다가 입원 절차를 밟고 각종 검사를 받았다. 며칠 지나, 아빠는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공부방을 접고 아이를 데리고 제주로 갔다. 아홉 살 된 아이를 사촌에게 맡기고 병원에 머물면서 아빠를 돌봤다.

   아직 엄마 품이 그리웠던 아이는 나와 함께 있겠다고 병원으로 왔다. 사흘쯤 지난 밤이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나길래 몸을 만져보니 불덩어리였다.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41도까지 오른 열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간 원인을 찾지 못했다가 아이가 설사하면서 장염으로 판정 났다. 소아병동과 아빠 병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기저귀를 갈고 또 갈았다. 그때부터였다. 아빠가 미워지기 시작한 게. 아빠를 살리려고 온 병원에서 아이가 병을 얻자 마음이 돌아섰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나. 아빠의 치매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수업하러 잠깐 병실을 비울 때마다 문제를 일으켰다. 식사가 나오면 밥상을 엎었고, 온몸에 분변을 발라놨다.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 전화에 수업하다 말고, 한달음에 달려가 냄새가 진동하는 병실을 치우고 아빠를 씻기는 게 일이었다. 그때마다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아파 팔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대체 왜 이러냐고 소리쳤다. 오보에를 불던 아버지가 오보에로 외할아버지를 때렸던 마음도 나와 같았을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하는데 난 왜 아빠를 찰싹 소리 나게 때렸을까. 날 보며 활짝 웃던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심통 맞게 변한 노인에 대한 분노였을까. 나머지 세 자식에게서 버림받아 모든 짐을 지게 된 막내의 울분이었을까.


   차라리 날 사라지게 해 달라던 기도를 계속하던 때, 태백에서 직장 다니다 퇴사하고 제주로 온 남편이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다. 하루아침에 반신불수가 되더니 말 못 하는 남편,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겼는데 위급해져 다시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아빠. 이번엔 아빠 병실과 남편 병실을 오갔다.

  2주가 흘러 남편이 건강하게 퇴원한 다음 날, 아빠의 장례를 치렀다. 친인척 모두 와서 인사하는 마지막 날에도 나머지 자식들은 오지 않았다. 끝까지 남이었다. 소설 속 내가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듯 그 인간들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삼일장을 치르며 다짐했다. 내 아이에게 절대 이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내 아이가 나를 떠안아 오보에를 휘두를 아픔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이제 다음 손님은 없다고.



소설적 요소를 연결해서 나만의 감상포인트, 소설 쓸 때 배우고 싶은 점, 감탄한 부분을 쓰지만 소설 줄거리와 소설 문장 인용은 자제하라는 교수님의 기말과제 지침. 제대로 이해하고 썼는지 모르겠다. 손보미 작가의 <육인용 식탁>에서 과제 마감 이틀 전에 <다음 손님>으로 작품을 틀었다. 시간이 많다고 한들 더 잘 쓸 것도 아니어서 두 눈 딱 감고 과제 제출 버튼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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