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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Dec 25. 2023

티끌이 가진 힘

공들여 보면 보인다

한국 오기 두 주 전부터 휴대폰이 충전되지 않았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휴대폰이 갑자기 속 썩이니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AS 센터가 어딨는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안을 들여다봐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종강 전이라 수업 듣고 시험을 보려면 인증을 받아야 하니, 어떻게든 충전해서 이 폰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충전 속도가 너무 느려서 서랍 속에 넣어둔 무선 충전기를 꺼냈다. 완충에 거의 10시간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충전했는데, 방전 속도는 너무도 빨라서, 고속 무전 충전기를 새로 샀다. 10시간까지 걸리진 않았지만 고속 충전기라 하기 민망하게 5~6시간 정도 걸려야 겨우 충전됐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휴대폰 상태는 마찬가지. 오전 일정이 계속 이어져서 한동안 AS 센터에 못 갔다. 소설 기말과제 마감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삼성스토어를 찾아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있다기에 네이버 지도에 의지한 채 무작정 뚜벅뚜벅 걸었다. 이십여분 쯤 걸으니, 내 눈엔 보이지 않는데, 화면엔 목적지 도착이라고 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드디어 삼성 스토어 발견.


센터 기사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증상을 설명했다. 핀셋을 살짝 집어넣더니, 뭔가 빼내는 것 같았다. "이물질이 꼈네요." 그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작은 티끌 때문에 잭이 끝까지 밀착되지 않았고 충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삼성 스토어를 나오면서 내가 만들어 낸 관계의 티끌은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내 눈엔 보이지 않아 빼낼 수도 없고, 원인 모를 이유에 관계는 더 틀어져갔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티끌을 제거하지 않고, 다른 임시방편만 찾았던. 딱 맞는 해법이 아니기에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충전을 해도 방전이 배로 빨라졌던 휴대폰처럼 건강하지 못했던 관계가 떠올랐다.


그 티끌이 가진 힘을 소멸시키려면 자세히 공들여서 봐야 한다는 것. 그래도 안될 땐 전문가의 힘을 빌려서 정확히 그 티끌을 빼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티끌 하나. 어쩌면 보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닐까. 그냥 지나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대면할 자신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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