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겐 쓰지 말아야겠다
<<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이정영
이 책을 왜 다운 받았을까? 리뷰 별점이 9.8 이여서였을까. 아님 어떤 이가 남긴 "그래야만 한다 강요가 담겨 있지 않는 책, 이웃의 정을 담담하게 담아 따뜻함을 울리는 책"이란 리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제목이 주는 위로 때문이었나.
이 책에 대한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저자 소개부터 탐탁지 않았다. "남들보다 잊는 속도가 빠른 사람 그래서 그날의 세세한 감정과 시선을 기록하는 사람"이 왜 거슬렸을까. 어디서 거슬렸던 걸까. '남들보다' 였을까. 삐뚤어진 내 맘 때문이겠거니 넘겼다.
바로 다음 장, 프롤로그에 쓴 "당신에게 있어서도 내 존재가 그리운 향과 같았으면 좋겠다." 문장을 보자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내 삶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만큼, 타인의 삶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에선 부하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가 이 문장에서는 책을 덮어버릴까 싶었다. "큰 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소박하게나마 당신의 마음에도 나와 관련된 다정한 기억 하나쯤은 심어 두고 싶다." '나는 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반발심이 튀어 올라왔다.
내가 이제껏 이정영이란 작가를 몰랐듯 작가도 나를 알리 없겠지만, 자기소개와 프롤로그 읽고 이토록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책은 처음 봤다. 섣부른 판단일까 싶어서 꾸역꾸역 페이지를 넘겼다. 아래층에 사는 동네 이웃분을 이모라 칭했고, 그분이 감자탕, 죽, 김치, 귤 등을 알뜰살뜰 챙겨 보내서 한껏 따뜻함을 느꼈었나 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썼을까? "이모님 입장에선 부담되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에 보답해 드릴 겸 고등어 몇 마리와 함께 귀가하기도 했다." 그리도 따스함을 느꼈는데, 왜 고등어 몇 마리로 생색을 내는지 모르겠는 마음에 입이 저절로 삐죽 댔다.
두 번째 에피소드 "염원, 낭만과 낙망 그 사이" 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고? "주변 사람들은 내게 꿈을 일찍 갖게 되어서 참 부럽다고 말한다." 고민했다. 아! 이 문장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난 왜 이 작가에게 계속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는 거지. 어떻게 썼야 했을까. 굳이 저 문장을 첫 문장으로 써야 할 만큼 임팩트가 있는 걸까.
"마른 잎들이 땅 위를 소복이 덮어 주는 가을"을 다른 책에서 봤다면 마음에 싹을 틔웠을까?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염원을 담아 쓴 문장에서 왜 나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당신은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부디 당신의 하루하루가 수수하게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더 읽다간 화병이 돋을 것 같아, 여기서 그만 그를 보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곱씹어 봤다. 왜 그의 글이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남들은 강요가 없다는 데, 내겐 왜 강요로 느껴졌던 건지. 심사가 뒤틀린 나 때문인 건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곤 내 맘대로 결론을 내렸다. 보여주지 않고 말해서였나 보다. 보여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단정 지었기에 내겐 강요로 느껴졌나 보다. 울림은 없고 울화만 남았던 하루, 이미 반백년 가까이 산 나는 교묘히 숨겨놓은 '~해라'를 들으면 청개구리 기질이 살아나서 그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