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클럽서 셰프와 만들었던 아가들
창피했다. 사 개월째 일자리를 찾았지만, 식당 알바 자리까지 번번이 까였다. 한국에서 따온 석사학위 따윈 짐이었다.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더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행복했기에 2016년 4월, 컬리네리 스쿨에 등록했다. 첫 쿼터 마치자 담당 교수님이 요리로 아무 경력도 없는데 윈 호텔과 패리스 호텔 총괄 셰프에게 추천했다. 최종 합격한 패리스 호텔에서 세프복과 기다란 모자를 받았던 첫날, 페이스트리 세프를 꿈꿨다.
좋은 교수님들이 하나둘씩 학교를 떠났다. 세 번째 쿼터 마친 후, 나도 학교와 호텔을 떠났다. 프리스쿨에서 5~6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초등학교 정교사 자격증 취득을 다짐했다. 사느라 바쁘단 핑계로 꿈은 가슴 한편에 잠시 묻어뒀다.
반년 간 한국에 다녀오느라, 다시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호텔을 그만두면서 주방일은 다시 안 할 줄 알았다. 벌써 6년째 생계형 요리사. 여전히 마음 한구석 창피함이 남아있다.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우리 식구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니, 감사해도 모자란데. 아직 과거의 영광을 다 털어내지 못했나 보다. 서서히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보니, 창피함은 곧 사라질 듯하다. 입으론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 한다고 말하면서 맘은 그렇지 않았다.
가슴 한편에 묻어 뒀던 꿈을 이루고자 2년 전에 특수교육 교사 자격증 과정을 신청했다. 작년 9월부터 강의 듣지 않고 멈춤 상태다. 영어로 글 쓰는 게 괴롭다는 어이없는 핑계를 대다가 글쓰기 먼저 배워야 한다는 의식의 흐름으로 올해 3월 문창과에 편입했다. 문창과와 교사 자격증, 쓰리잡까지 다 병행할 수 있을까. 못할 거라 단정 짓지 말자. 뭐든 해내겠지. 태평양 건너 여기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니.
백일 쓰기/ 셋째 날(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