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 없던 온라인 글쓰기 모임의 첫 번째 줌미팅에서 "미국엔 왜 갔어요?" 질문을 받았다. 심플하기 그지없고, 공격 의지조차 없던 그 무해한 질문에 그간 꾸역꾸역 묻어뒀던 통한의 시간이 쏟아지듯 눈은 빨개졌고 금세 물이 차올랐다. 주책맞은 눈물 등장에 화들짝 놀라 훔쳐내기 바빴는데, 그 마음을 글로 담아내라고 따뜻하게 말해준 멤버들.
지난 8년의 세월은 두 단어와 하나의 수식으로 대변됐다. '미국 = 개고생' 살아내느라 여기저기 생긴 훈장. 검버섯처럼 변한 데인 자국은 양팔에 사방으로 흩어졌고, 손가락 마디마디엔 칼질로 생긴 굳은살이 자리를 잡았다. 펜보다 칼이 더 익숙해져야 했던 그 시간.
직업으로 사람의 가치를 강요당하는 사회에 사는 일원으로서, 타인에게 비친 나는 루저일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루저로 규정했다.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턱없이 가소롭고 가엽게 여겼다. 대학원 동기와 선배, 후배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됐다.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제 노동자일 뿐이니까.
선생님, 원장님으로 불렸던 나는 태평양 건너온 이곳에서 이제껏 들어 본 적 없던 아줌마로 불리기도 했다. 지시를 내리던 관리자에서 열 살 어린 보스 말에 순종해야 하는 라인쿡이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동료들을 무시했고 나까지 무식해져 간다며 나를 비롯한 그들까지 깎아내렸다.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것일 뿐인데, 나를 얕잡아 보던 그 눈으로 감히 함부로 타인의 삶까지 얕봤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과 다른 존재란 뿌리 깊은 이질적인 선민사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업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가진 고유한 가치도 함께 사라질까. 그리 사라질꺼라면 가치라 부를 수도 없을 터.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지난날의 오만,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해 조금씩 눈 떠 간다. 견뎌내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더 단단하게 여물어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