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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Mar 27. 2023

나는 미국이 싫다!

3) 창살 없는 감옥  



     면허를 20대 초반에 땄지만 15년 넘게 운전한 적이 없다. 미국에서는 운전이 필수라기에 3개월간 특훈을 받았다. 이제 평행주차도 할 수 있다. 운전 연습하려고 산 이백만 원짜리 붕붕이는 어디든 때맞춰 나를 데려다줬다. 가끔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가다 서기도 한다. 그래도 나만의 첫차라 그저 좋았다.


그런 날이 있다. 싸한 기운이 몸 전체를 휘감는 날! 그날이 그랬다. 이상하게 붕붕이를 타고 싶지 않았다. 지인에게 주기로 한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버스를 타기가 애매했다. 택시를 타자니 거리가 멀어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주차타워에서 붕붕이를 꺼냈다. 주차장에서 도로 진입하고 분명히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차선을 변경하는데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차가 섰다. 순간 모든 게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였다. 차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 몸도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삐그덕 대는 차 문을 열고 나왔다. 5톤 LPG 가스 배달 트럭이 내가 탄 쪽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트럭 기사님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언덕배기에서 가속도를 받아 내려오는데 갑자기 진입하는 나를 발견해서 브레이크를 밟았단다. 그때 나를 못 봤으면 사고가 크게 났을 거랬다. 그날 붕붕이는 폐차됐고, 몸에 상처 하나 없었지만, 트라우마가 생겼다. 보조석에 타도 다른 차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여전히 소스라치게 놀란다. 8년이 지났는데 아직 운전대를 못 잡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서부는 동부와 달리 집 주변에 도보로 갈 수 있는 편의 시설이 없는 곳이 많다. 특히 우리 동네는 한 시간 넘게 걸어야 조그마한 편의점이 나온다. 그러니 간단히 장을 보려고 해도 차로 이동해야 한다. 남편이 데려다주지 않으면 그 어디도 갈 수 없다. 처음 느끼는 무기력함이다. 여기에 오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어디가 어딘지 몰랐고, 버스를 탈 줄 몰랐으며, 버스표를 어디서 사는지조차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고 싶지 않았다.


  영주권 있고, 의사소통 문제가 없고, 남편이 나고 자란 나라니 이민을 만만하게 본 잘못이다. 시어머님 건강 문제로 서둘러야 했지만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반년째 둘 다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착금이 떨어지면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불안해질 대로 불안해진 나는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 돌렸다.


틈만 나면 시비를 걸었다. “잘살고 있는데, 네가 오자고 했잖아! “네 나라니까 뭐라도 좀 해봐!, 도대체 네가 아는 게 뭔데?” 이렇게 포악을 떨어도 남편은 말없이 나를 지켜봤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독살스러워졌다.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킨 우울감은 남편과 아이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20대 초반에는 ‘대학 중퇴자를 누가 받아 주겠어?’가 마음에 가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젠 그게 독이 되어 ’ 나이 많은 고학력 외국인을 좋아할 곳이 어딨어?’념했다. 그 못난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생채기를 냈다. 하루가 멀다고 울었고, 그런 나를 며 남편은 지쳐갔다.


숨이 막혔다. 집은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갈 곳도 없으면서 땡전 한 푼 없이 맨몸으로 집을 나갔다. 얼마 못 가서 시큼털털한 냄새를 풍기는 부랑자가 말을 걸며 가까이 왔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있는 힘을 다해 집으로 힘을 다해 뛰었다. 이 낯선 곳에서 나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족 외에는… 감옥을 만들어 가둔 것은 바로 나였다.




마음 챙김: 두려움은 나를 삼키는 괴물이다.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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