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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Mar 27. 2023

프롤로그

   8년 전 시어머니 건강 악화로 한국에서 일군 터전을 급하게 정리하고 미국으로 왔다. 택지 팔아 만든 정착금은 반년간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2016년 네바다주 최저시급은 8.25불이었다. 그러나 최저 시급을 주는 곳에서도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살아내느라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게 먼저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국 공립학교 정교사에 도전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14년간 한 길을 걸어온 나를 믿고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원어민 애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냐며 도망갈 게 아니라. 그후로 이어진 학습된 무기력과 패배주의는 당당했던 예전의 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보다 못한 남편이 뭐라도 좀 배워보라고 설득했다. 제과 제빵을 배울 수 있는 컬리네리 스쿨(요리학교)에 다니면서 활기를 찾아갔다. 


   그 무렵 박사학위를 딴 대학원 선배, 동기, 후배가 한국과 미국에서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야! 게네들이 대학교수 되는 동안 넌 대체 뭐 했냐?’ 비아냥댔다. 꿈꾸는 법을 잊고 자기 비하를 하는 못난이로 변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마지못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았다. 오랫동안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운동은커녕 불규칙한 생활과 식습관으로 체중이 22kg나 늘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았고 살아지는 대로 생각했다. 교육 사업가에서 육체노동자로 떠민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런데 “엄마가 보고 싶다”라고 말한 남편만 탓했다. 


  어느 날, 낯빛은 어둡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거울에 비쳤다.

 - 순미야! 너 지금 괜찮아?

 - 아니!  나, 안 괜찮아! 어떡하지?

 - 일단 밖으로 나가서 걸어봐

  처음으로 마음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한낮에 물병도 안 들고나갔다. 결국 몇 발짝 떼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 몇 걸음은 다음 날, 집 근처를 뛸 맘을 들게 했다. 물론 100m 다 못 뛰고 걸었다. 매일 조금씩 뛰다보니, 7개월이 지난 지금 1시간 4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렇게 이어진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습관으로 체중이 15kg 줄었다. 매일 한쪽 읽기는 1시간 독서로 이어졌다. 책을 다 읽으면 한 줄이라도 감상평을 썼다. 한 줄씩 채워나간 글은 숨트멍을 만들어 냈다. 마음이 숨쉬면서 칠흑 같은 어둠도 걷혔다. 손으로 꾹꾹 써 내려간 한 글자 한 글자는 메마른 토양에 망울망울 움틀 씨앗이 되어 주겠지. 



마음 챙김: 일단 시작하기! 한 발짝 떼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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