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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솜 Mar 27. 2023

나는 미국이 싫다!

1) 액체 폭탄 아니야!

   

  영주권이 예상보다 더 늦어지는 바람에 남편과 아이 먼저 9월 초에 미국으로 들어갔다. 미국은 8월 말에 새학기가 열려서 아이 전학을 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12월 중순에 영주권 심사 통과한 서류를 받았다. 아이 생일에 맞춰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짐을 꾸렸다. 힙색, 손가방, 배낭, 중간 크기 캐리어 두 개를 이고 지고 새벽 댓바람부터 제주에서 김포까지, 김포에서 인천공항으로 갔다.


항공사에 탑승수속 하는데, 한 직원이 위아래로 나를 훑더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가방 제한 수 넘었으니 220달러를 내란다. 아! 손가방이랑 힙색까지 셀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겠는가,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입술 꽉 깨물고 힙색에 넣어 둔 100달러짜리 지폐 백 장 중 세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탑승 수속과 출국 심사를 끝내고 가방을 주렁주렁 멘 채 여객터미널로 들어갔다. 꿀꿀할 때는 쇼핑이 최고! 가벼운 패딩 조끼가 필요하던 참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몽클레어로 직행했다. 백화점에 비해 맘에 드는 게 없었지만, 사이즈 맞는 걸로 650달러 주고 업어왔다. 아들 녀석 데리고 3개월째 고군분투 중인 남편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정관장에 들어가서 홍삼정이랑 홍삼정과를 500달러어치 샀다. 논스톱을 타려다 돈 아낀다고 샌프란시스코 경유행을 샀는데 한 시간 만에 1,400달러를 썼다


자꾸 잠이 깼다. 만불 가까이 든 힙색을 자는 동안 누가 가져갈까 꼭 쥐고 잤더니 손가락이 쩌릿쩌릿했다. 뒤척이다 보니,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 비행기 환승 시간은 1시간! 입국심사를 받는데 일이 터졌다. 공항 직원이 날 보며 집게손가락을 강아지 부르듯 까딱까딱. 힙색을 가리키며 당장 풀란다. 가까이 보니 더 험상궂고 심통 맞게 생겼다. 현금이 더 있냐 묻었자 고개를 저었다. 만 달러까지 세관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마추어처럼 왜이러냐며 중얼댔다. 중얼대던 소리가 거슬린 건가. 눈살을 찌푸리고 전대를 아래위로 내려치더니

- 현금이 만 달러보다 더 있으면 안되는 거 몰라!

- 아니, 없다고. 그럼 뒤져 보던가. 안나오면 어쩔건데!

내 속을 뒤집어 까서 보여줄 수도 없어 답답한 마음에 가슴팍을 양손으로 팍팍 치고 양팔을 크게 벌리면서 덩치가 집채만한 그 흑인 여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더 심통나고 못된 목소리로 빽빽거렸다 “야! 네가 미국에 왔으면 미국법을 따라야지! 여기 살러 온 거 아니야. 너 태도가 왜 그따위야!” 아니 미국법 안 따른 게 대체 뭐람. 뜬금없이, 영어 할 줄 모르면 기다리란다. 아니 이제까지 나랑 말한 건 불어임? 환승 30분 남았는데 통역자가 올 때까지 저기 구석에 찌그러져 있으란다. 환승시간 얼마 안남았으니 보내달라자, 자기 알바 아니란다. 비행기 놓치는 건 네 사정이란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면세점에서 산 홍삼을 걸고넘어지며 뭐냐고 물었다. 양손으로 마른세수 하듯 얼굴을 연신 비비며 홍삼이라고 알려줬다. 이 여자 홍삼이 뭐냐 다시 묻는다. 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 홍삼은 말이야, 뿌리식물이고 몸에 엄청 좋아. 면세점 포장 딱지 있지. 여기서 샀어.

- 그니까 대체 그게 뭐냐고

무한반복 도돌이표였다. 인내심 테스트하기로 한 건가. 아니, 홍삼을 홍삼이라 하지 뭐라 하냐고요. 다시 또 빽 지를뻔 하다, 엄한 소리기 튀어나왔다. “이거 액체 폭탄 뭐 그런거 아니야!” 아뿔싸!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입을 꼬메버리고 싶었다. 그 와중에 폭탄처리반이 등장했다.



마음 챙김: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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