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랑 유럽여행 셋째 날. -독일 뮌헨
하이델베르크에서 세 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
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기차를 영화에서만 보았는데
처음으로 타게 된 것이다.
어찌나 신기하고 재미나던지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신랑과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마주 앉아 있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점점 현실감이 무뎌지고 있었고 그만큼 매우 자유로워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떠한 고민거리를 한국에 두고 왔는지 따위는 자유로운 내 영혼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드디어 뮌헨에 도착!
뮌헨은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데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에 걸쳐서 열린다.
우리가 도착한 때는 아쉽게도 조금 이른 9월 초였고 축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축제 준비로 바쁜 도시를 볼 수 있었고 그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맥주를 맛보기로 했다.
뮌헨에 도착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뮌헨 시가지가 아닌 외곽에 있는 호수였다.
이름하야 슈타른베르거 호수~!
뮌헨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삼십 분가량 가면 있는 한적한 호수다.
현지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호수라고 한다.
사실 보이기엔 호수보다는 바다에 가까울 만큼 굉장히 크고 아름다웠다.
관광객은 많아 보이지 않았고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다.
도시보다 산과 들 그리고 바다와 호수를 더 사랑하는 우리는
이렇게 나라마다 숨겨진 자연경관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이 날, 날씨가 약간 흐리고 구름이 많았는데
잔잔한 호수와 어우러져 오히려 운치가 느껴졌다.
호숫가에 있는 새들과 놀기도 하고 쭉 늘어져 있는 벤치에 한 사람은 앉고
한 사람은 다리를 베고 누워 한참을 가만히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22일간 여행을 계획하고 무거운 트렁크 두개를 끌고 다녀야 해서
최대한 한 곳에서 숙박을 오래 하려고 일정을 짜다보니
뮌헨에서 2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뮌헨 시가지를 둘러보는 것은 단 하루의 일정으로 짜여져 있기에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볼거리가 많은 뮌헨에서 우리 부부의 취향에 꼭 맞는 곳만 골라 다니기로 했다.
호수에서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숙소에 짐을 맡긴 후 본격적으로 시가지를 둘러보기 위해 나왔다.
노이하우저 거리, 프라우엔 교회, 마리엔 광장과 그 안에 있는 신시청사,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호프브로이 하우스 외관을 쭉 둘러보고 우리에게 중요한 밥집을 찾아 나섰다.
이 곳은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춤 뒤른 브로이'.
바이에른 전통 음식인 고기 요리가 유명한 곳이다.
한국 족발과 비슷하다는 학센과 또 다른 바이에른
전통 고기 요리 하나를 시켰고
감자 튀김과 구운 야채를 사이드 메뉴로 하고
기대하고 기대하던 맥주를 시켰다.
자타가 인정하는 맥주의 본고장이어서인지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 때문인지
음식도 기가 막혔지만 맥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다.
특히 뽀얗게 올려진 거품은 어찌나 부드럽던지...
신기한 건 맥주를 거의 다 마실 때까지
그 거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맥주 다음으로 기대하고 기대하던 것이 바로 '학센'이라는 요리이다.
우리나라 족발과 맛이 거의 비슷하다.
다만 생김새가 조금 다른 것이 우리나라 족발은 일부의 고기가 함께 썰어져 나온다면
학센은 통째로 나와 직접 포크로 집고 나이프로 썰어서 먹어야 한다.
쫄깃 쫄깃한 식감은 한국인 입맛에 딱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또 하나의 요리가 있었는데
학센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나오는 감자요리.
동글동글하게 생긴 볼 형태의 요리인데 입에 넣으면
우리나라 감자전과 맛이 비슷하고 식감도 쫀득한 것이
묘한 매력이 있었다.
여행 후 한참이 지난 지금...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학센 옆에 있던
그 감자 덩어리 요리다.
이름을 물어봤어야 했는데...
덩어리라니...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르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멋진 야경으로 옷을 갈아입은 시가지를 현지인처럼 맘껏 누비며 여기저기 걸었다.
그러다가 만난 신시청사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술도 한잔 하고 야경도 좋고 바짝 긴장하고 있던 정신과 몸이 무장 해제되었다.
다음 날 가장 수고스러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호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분 좋게 샤워를 마치고 기분 좋은 잠을 청하려던 순간!
드디어 뮌헨의 제대로 된 환영식? 신고식? 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싸우지도 않았고 모든 게 순탄하게 풀리는 기분 좋은 하루였건만
역시 여행이라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
침대에 앉아 탄산수를 마시던 신랑이 손으로 급히 뭔가를 내리친다.
"뭐야?"
"몰라 벌레인가 봐."
"아~ 어쩌다 하나 들어왔나 보다."
"어! 또 있다."
"또! 또! 또!"
이렇게 십여 마리를 잡았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 시트며 바닥 카펫, 벽 할 것 없이
다양한 형태의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 드! 기!'였다.
유럽에 호텔 잘못 고르면 진드기로 고생한다는 소리를
인터넷에서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설마 그 일을 우리가 겪게 될 줄이야.
온몸에 소름이 돋고 한 껏 올라 있던 취기와
좋은 기분은 한 순간 와장창 깨지고
급 방전된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리셉션에 내려가 짧은 영어로 하소연을 하고
그들이 침대 시트를 갈아주었지만
벌레는 끊임없이 기어올라왔다.
바꿔 줄 방이 남아 있지 않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호텔 직원.
이 곳에서 2박을 해야 하는 우리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음 날은 다른 호텔로 옮겨 주겠다며 대신
오렌지주스 한 병으로 우리를 달랬다.
한참을 공황상태에 빠져 로비에 앉아 있던 우리는
다음 날 여정을 위해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진드기가 다른 곳으로 옮겨 들어가지 않도록 우선 가방을 꽁꽁 잠그고
후드티와 양말 등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벌레들이 축제를 벌이는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 불을 끄고 뮌헨 진드기들에게 우리 몸을 맡겼다.
진드기는 그렇게 소름 돋는 뮌헨 환영식으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아쉬웠던 건지 그 후로 며칠간 우리 트렁크에 타고 여행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