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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Yeon Cha Sep 25. 2015

힘 빼기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겨요.

대학 다니던 시절.

친구와 함께 푸켓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저 둘이서 한국이 아닌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 만으로

흥분해 있었다.


투어도 하고 여행 패키지 식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호텔 앞 이국적인 바에서 논알콜 칵테일도 한잔 마시며

우정을 쌓았다.


일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지만

그냥 잠자리에 들기엔 밤 하늘의 별도 많고

아름다운 푸켓의 경관이 가만 두지 않았다.

이쯤 되면 연인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친했던 동성친구와 함께였던 나로서는 억울하다.


아무튼 우리는 늦은 밤

달아올라 식을 줄 모르는 20대의 혈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호텔 수영장으로 뛰어 들었다.


문제는 둘 다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남탕은 안 들어가봐서 모르겠으나

동네 목욕탕 가면 아주머니들이 냉탕에서 이리저리 물을 휘 휘 저으며

탕의 끝에서 끝까지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딱 그런 포즈로 물 속에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그나마 나는 유일하게 수영 비슷하게 할 줄 아는 게 있는데

배영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물에 힘 빼고 드러누워

손 발을 젓는 기술이었다.

그 행동을 한창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나에게

"우와!"

하며 크게 감동하더니 가르쳐 달란다.

그때부터 어설픈 수영 강습이 시작됐다.


포즈를 보여주겠다며 시범을 보이던 나나

따라 해 보던 친구나 물을 먹기는 매한가지

그 꼴을 보고 있던 외국인들 꽤나 웃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수영 마치고 나올 때 보니

물이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깔깔


한참을 물을 마시며 수영을 했을까?

친구에게 안 되겠다 싶어서

"야! 몸에 힘을 빼! 그냥 물 흐름에 몸을 맡겨!

너의 몸 어디에도 힘을 주지 마!"

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했다.

"눈 감지 말고 똑바로 뜨고 네 몸을 느껴!"

'캬 내가 이런 멋진 말을 하다니'

스스로 감격하던 중

나의 배영 실력에 감동한 친구는 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대로 몸에 힘을 풀고 송장처럼 수영장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과 같이

수십 번의 노력에도 물에 뜨지 않던 친구가 드디어 콜라병 마냥 동동 뜨기 시작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까 다급한 나는

"좋아 잘 했어! 이제 팔을 젓고 다리를 위아래로 부지런히 흔들어!"

하고 외쳤다.

친구는 나의 권유대로 실행했다.

그러자 친구가 점점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정말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흥분해서 소리치다 또 한 번의 물을 먹어야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좋아서 포올짝 포올짝 (물 속이어서 빨리 뛰어지지 않는다) 끌어안고 뛰었다.

"거 봐! 힘 빼니까 되잖아."


우리는 그렇게 늦은 밤 수영을 마치고

주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 함께 수영했던 수영장이 내려다 보이는 방안 테라스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야! 고맙다. 이 번에 네 덕에 푸켓에서 수영도 배워가고..."

"뭘... 근데 정말 힘 빼는 게 핵심이지?"

"그러게..."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가다 보면 어느 새 목적을 잃고

욕심으로 가득 차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세상의 모든 일에 가끔은 힘 빼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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