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인생 산책
그래서, 겨울 내내 묵혀두었던 스케이트보드를 꺼내 타보았다. 염증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냥 타보기로 했다. 그리고 축구공을 꺼내 리프팅도 해보았다. 좋았다. 그렇게 내 몸이 좋아하는 것들을 대하는 내 태도가 좋았다.
초여름의 더위가 사람들을 공원으로 내몰고 있었다. 공원은 텐트를 치고 안락의자를 펴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도 한동안 그 더위를 품은 햇살을 느껴보았다. 아이들은 따가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벗어던지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햇살처럼 반짝였고, 나는 그런 아이들의 땀을 닦아주며 생기를 얻고, 용기를 얻었다.
오랜만에 올라탄 스케이트보드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단단한 경계를 보였다. 발을 올린 나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백혈병을 얻기 전처럼 호전적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다루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이 내게 또다시 염증을 안겨주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더 컸다.
그렇게 스케이트보드를 탐색하며 병마와 싸우는 중년의 남자가 여름 햇살과 시선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간간히 아이들이 다가와 “아빠, 스케이트보드 타?” 하고 안부를 묻듯 말을 건네는 순간들 외에는, 나는 내 안의 두려움과 조용히 싸우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 스케이트보드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을 다루는 솜씨가 서툴다고 느꼈고, 알리를 시도하는 내 안의 두려움까지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어설프고 낯선 나의 노력은 결국 무릎에 상처를 내고, 발목에 통증을 남겼다. 나는 쩔뚝거리며 생각했다.
아, 힘들다. 아, 두렵다.
이렇게 늙어가는 것일까? 젊음은 온데간데없고, 중년의 시간이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어제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드러나는 탈세계화의 흐름이 나를 두렵게 하더니, 오늘은 내 안의 시간에 대한 공포가 나를 괴롭힌다.
햇살은 여전히 영롱하고, 페달을 밟는 아이들의 발길은 힘찬데, 왜 나는 이렇게 작아져가는 것일까. 아, 햇살이 이렇게 좋은데, 왜 나는 충분히 좋을 수 없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걸. 무릎을 다쳐도 다시 일어날 의지를 품고, 다시 데크 위에 서려는 내 안의 작은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는 걸.
나는 오늘도 작지만 분명한 발걸음으로 내 안의 시간을 받아들이려 한다. 다친 무릎에도, 흔들리는 마음에도, 나는 다시 나아간다. 나아가고 싶다. 어설프지만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