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그림, 선생님의 액자
돌이켜보면, 내가 매번 작심삼일로 끝난 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의지가 너무 강했다. 시작하는 날이면 늘 거창했다. 매일 한 시간, 주말엔 두 시간, 한 달 안에 회화 완성. 그렇게 불을 크게 지펴놓고는, 며칠 만에 다 타버렸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다. 열심히 한 게 오히려 독이 되었던 시절.
그래서 이번엔 다르게 했다. 아예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냥 10분만 하자. 어차피 못하면 말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나를 살렸다.
10분짜리 전화 영어는 부담이 없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고,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적었다. 그냥 벨이 울리면 받고, 10분 채우면 끊었다. 틀려도 괜찮았다. 어차피 10분이니까.
그렇게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별생각 없이 반복했다. 잘하고 있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냥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루틴이 되어 있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핸드폰을 집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안 하는 날이 오히려 어색했다. 몸이 먼저 기억하기 시작한 거였다.
루틴이 자리를 잡고 나니, 그제서야 욕심이 생겼다.
‘이 정도면 좀 더 할 수 있겠는데?'
이때가 중요하다. 처음부터 이 욕심을 부렸다면 또 타버렸을 거다. 하지만 루틴 위에서 피어난 욕심은 달랐다. 기름이 잘 달궈진 팬 위에 고기를 올리는 것처럼, 타이밍이 맞았다.
거기에 간절함이 더해졌다. 이민. 막연하게 꿈꾸던 그 단어가 점점 구체적인 목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간절함이 불쏘시개가 되었다. 10분이 15분이 되고, 20분이 되고, 결국 30분이 되었다.
그렇다고 30분이 늘 뜨겁게 타오른 건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슬슬 흥미가 식기 시작했다. 교재는 반복됐고, 대화 주제는 뻔해졌다. 이때 무작정 의지를 불태웠다면 고기는 다 까맣게 타버렸을 것이다.
나는 대신 불을 살짝 줄이고, 조미료를 쳤다.
조미료는 공감대였다. 선생님은 미혼이었지만 귀여운 조카들이 많았다. 나도 딸 둘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가 대화 소재가 되었다. 할로윈 때는 서로 아이들 사진을 이메일로 나눴다. 한국 딸들의 할로윈과 미국 조카들의 할로윈은 달랐다. 사탕의 종류도, 복장도, 분위기도. 그 차이가 오히려 더 풍성한 대화를 만들어줬다.
“Oh my god, your daughters are so cute!"
그 한마디가 그날 30분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렇게 월수금 아침 30분이, 1년 반을 넘겼다.
잘한 날도 있었고, 버벅인 날도 있었다. 하기 싫은 날도 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른 날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끊기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가 어느 날 말했다.
“당신이 진짜로 가고 싶구나.”
그 말이 이민의 시작이었다.
수업이 마지막 날을 향해가던 즈음, 나는 두 딸에게 부탁을 했다.
"아빠 영어 선생님한테 그림 그려줄 수 있어?"
딸들은 별말 없이 색연필을 꺼냈다. 알록달록하고, 삐뚤빼뚤하고, 그래서 더 예쁜 그림이 완성됐다. 나는 그걸 스캔해서 선생님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며칠 뒤, 답장이 왔다.
“I printed and framed it. It's on my wall now."
선생님의 집 벽에, 우리 딸들의 그림이 걸렸다.
10분짜리 전화 영어로 시작한 시간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일상 속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이메일을 오래 들여다봤다.
30분은 그냥 시간이 아니었다.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