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하루 30분이 쉬웠을까?

시작이 두려웠던 거였다

by 정성담

아침 7시 알람이 울리면, 나는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다.


‘5분만 더…’


눈을 뜨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 회사에 가기 싫어서라기보다, 또 비슷한 하루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지겨웠다. 밀린 보고서, 눈치 보이는 회의, 애매한 농담에 웃어야 하는 점심시간. 몸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만 마음은 늘 이불 속에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침, 이민을 꿈꾸며 출근 준비 전에, 딱 10분짜리 전화 영어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30분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한국어로도 아침에 30분 동안 떠들 일이 없는 사람이, 영어로 30분이라니. 그래서 나에게 허락한 건 고작 10분이었다. 10분이면 버틸 수 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겨우 설득했다.


첫 수업 날, 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Hello, this is ….”


내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입은 열었는데, 머리기 새하얘졌다. 준비해 뒀던 자기소개 한 줄도 말하지 못했다.


“Y… yes… hello… I’m… uh…”


결국 그날 수업은 교재를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몇 번 질문을 던지다 포기한 듯, 그냥 책에 나온 문장을 읽고 따라 하라고 시켰다. 물으면 버벅이고, 읽으라면 읽고.


전화를 끊고 나서,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라고 이게 쉬울 줄 알았나.’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후 아침이 되자 또 벨이 울렸다. 그날도 교재만 열심히 읽었다. 선생님이 뭔가를 물으면 “Pardon?“만 세 번쯤 되풀이하다가, 결국 또 책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10분짜리 수업이 며칠 쌓이자, 뭔가 편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5분만 더 해볼까?’


어차피 교재를 읽는 거라면, 10분이든 15분이든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렇게 수업 시간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10분이 15분이 되고, 20분이 되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여전히 버벅였지만, 최소한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어떤 평범한 아침이었다.


“What did you do yesterday?”

‘이런 질문도 제대로 대답 못했는 데 그날은 뭔가 다듬더듬 대답이 나왔다.


“I… met my friend… and… we… ate… chicken and beer.”

선생님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Oh! You like chicken and beer! Me too!”


그 순간, 통화 시간이 10분을 훌쩍 넘긴 걸 눈치챘다. 나는 전보다 조금 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런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게 대화구나.’


그날 이후로 수업 시간을 30분으로 바꾸었다. 여전히 문법은 엉망이었고, 단어는 부족했지만, 이제는 교재 뒤에 숨지만은 않았다.


나라고 하루 30분이 쉬웠을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됐다.


30분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시작이 두려웠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