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라는 시대를 건너
할머니께서 치매를 앓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우리 부모님과 가까이 살고 계셨을 때 하루 두세 번 들러보며 식사며 세간을 챙겨드리던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24시간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왔다.
아빠 형제 셋이 돌아가며 상주하고 우리 엄마와 작은 엄마가 틈틈이 돌보았지만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치매 약은 처음 1~2년은 드실 땐 좋아지셨고, 유지가 되셨지만 점차 잘 듣지 않게 되었다. 결국 가족들은 큰 마음을 먹고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해 계시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린다.
치매도 그렇고 연세도 있으시니 몸도 마음도 좋지 않은 상태셨으나 처음에는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것도 아셨고, 1년 정도는 기력은 없으셔도 매주 우리 부모님과 작은댁 어른들이 찾아가면 대화도 나누고, 간식도 드시고, 이야기도 나누셨다.
때로 오락가락하셨고, 하신 말씀을 금세 잊고 또 하시고 또 하셨지만, 사실 끝까지도 정말 치매가 맞나 싶게 가족을 알아보셨다. 말씀을 못하셨지만 눈은 알아보시는 눈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 많이 정신이 혼미해지셨고, 그보다는 몸이 많이 노쇠하셔서 움직이지 못하시고 누워계시게 되었고, 지난한 시간만 흐르고, 이렇게 계속 계시는 것이 맞을까 싶게 야속한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그러다 3월 중순쯤 정말 위독하셔서 어느 순간이 마지막이 될지 1초 후일 수도 있는 그런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뵈러 갔었고, 다행히도 내 얼굴도, 증손녀의 얼굴도 알아보시는 듯한 모습이셨다.
그렇게 또 괜찮구나 싶었다. 괜찮다는 말은 사실 맞지 않다. 그냥 이렇게 또 한참 가시는 걸까 싶었다. 사실 너무 안쓰럽고 마지막이 고통스러우실 것 같아서 이렇게 그냥 누워계신 상태가 계속되는 건 너무 슬프다고 생각했다.
한 2년 만에 우리 가족 여행을 예약했다. 우리 딸 생일이 곧 다가오고, 그날은 나와 남편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해서 우리에겐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약을 한 다음날인가 할머니께서 정말 정말 위중하단 연락이 왔고, 그날 새벽 내내 잠못이루다 여행은 취소했고, 오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유난히 긴 겨울이 끝난듯한 4월 1일, 따뜻한 봄바람이 가득한 날 거짓말 같은 소식이었다.
마지막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했었고, 고통 없이 평안한 상태를 기도했지만 정말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참 많이 슬펐다. 매우 가까운 가족의 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난 스무 살쯤부터 이 날이 언제일까 사실 걱정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선 5살에 돌아가셨고, 외조부모님 두 분 다 아직 살아계신다.
우리 할머니는 34년생으로 만 91세이셨다. 오래 사셨고, 이 시간은 참 많은 변화가 있던 시대라 생각한다.
오래 사신만큼 손자, 손녀들의 결혼도 모두 보시고, 증손녀들도 보시고, 할머니의 힘이자 버팀목인 아들 셋이 늘 곁을(특히 첫째인 우리 아빠, 함께한 우리 엄마...) 지켰으니 자식 복은 있으셨다 생각한다. 개성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유모가 몇이나 있던 유복한 집의 딸이셨다고 하는데, 스무 살이 안되었을 때 6.25가 터졌고 부산까지 피난을 가시게 되었고, 결혼을 하시고 시대의 풍파를 다 맞으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모르는 서울에 와 형제들과 자리 잡아가며 아이들을 키워가며 사셨을 것이다.
전쟁통 피난 이야기는 두고두고 자주 해주셨는데 어려서 읽었던 안네의 일기스러운 일본 순사가 오면 이중으로 만든 벽 뒤에 숨어있었다는 이야기, 일본 사람도 사실 사람인지라 쌀주고 뭐 주고 하면 그냥 눈감고 넘어가주기도 했단 이야기, 그럼에도 늘 불쑥 찾아와 장독대든 어디든 숨었어야 했단 이야기... 그런 시대를 건너서 오신 분인 것이다.
우리 엄마에게는 시어머니시고, 크면서 바라본 시어머니로서의 할머니가 어떤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 엄마에게는 복잡한 여러 감정이 있을 것이다. 할머니도 엄마도 시대의 피해자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나도 좀 철이 들고 하는 말이지만. 그런 시간을 거치지 않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반드시 있다. 무튼 그런 이야기는 차치하고 내 입장에서 우리 할머니는 항상 예뻐해 준 기억밖에 없다.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던 시대라 친구들도 우리 할머니 오빠만 이뻐해라는 말을 한다던지, 딸부잣집에 막내아들이 있으면 아들 낳으려고 그랬구나라고 생각한다던지 그런 분위기였다. 작은 아버지 두 분은 각각 아들 하나씩 있는데 우리는 딸 둘만 있으니 할머니께선 우리 부모님께는 아마도 아들 하나 있어야지 않겠니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 단 한 번도 나와 내 동생 앞에선 그런 말씀이나 내색을 정말 한 번도 한 적 없으신 분이다. 시간이 흘러 흘러 요새는 딸이 더 좋다더라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엔, 나에겐 너희 엄마는 딸이 있어 좋겠다 이런 말씀만 해주셨다. 나는 딸이 없으니 너희 엄마는 좋겠구나라며. 다 진심은 아니셨겠지만 그러셨다.
내가 한 다섯 살, 여섯 살쯤에는 엄마와 아빠가 바쁘실 때 할머니 댁에서 며칠 지내고 오기도 하고, 그럴 때도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고, 근처에 사실 때 학교 끝나고 가면 할머니가 밥도 자주 챙겨주셨다.
할머니 90세 인생 중 약 40년은 함께 했고, 내가 어릴 때 50대의 할머니는 내 눈엔 그저 완연한 할머니였으나 사실은 그때만 해도 젋은셨네 싶고, 이렇게나 나머지 세월이 이렇게 후루룩 흐를 줄 전혀 몰랐다.
시간에 대해 생각이 많던 올해,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브런치 글을 쓰고 다음날 이렇게 곁을 떠나시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유한한 시간에 대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참 몰랐다기엔 당연한 진실인 시간은 흐르고,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 지난주.
화요일부터 3일장, 토요일 삼우제까지 길어야 5일 정도 시간인데 거의 한 달 정도는 시간이 흐른듯한 기분이 든다. 출근이 왜 이리 낯설고, 어딘가 오래 여행하고 온 기분이 드는지.
원래 쓰려던 글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쓰고 싶었던 글.. 할머니를 그리고 추모하며 짧게나마 이렇게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