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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r 07. 2022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었던 전투


1827년 3월 27일, 남미의 두 거대한 나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의 이름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남쪽에 있는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 (Carmen de Patagones)에서 발생해 이름 그대로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 전투라 불리는데요. 1825년부터 1828년까지 일어났던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전쟁을 벌이게 된 건 우루과이의 독립 과정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1825년 독립 국가가 됐음을 선포한 우루과이는 중립 입장을 선포하기보다 아르헨티나와 더 가까운 친분 관계를 유지했고, 심지어 몇몇 독립 지도자들은 아르헨티나에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평소 라 플라타 강 유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브라질 입장에서 이 소식은 당연히 좋게 들릴리 없었고, 곧바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 전쟁을 선포해 함대를 보내게 됩니다. 


한편 전투가 벌어졌던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는 전쟁의 향방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게 파타고네스는 손상된 배를 수리하고, 식량을 보충하는 곳이었고, 또 자신들과 계약을 맺은 해적들이 브라질 함대를 공격한 뒤 전리품을 챙겨 오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브라질 함대를 이끌던 핀투 게데스 제독은 파타고네스를 공격해 해적들의 공격을 멈추고 나아가 강 남쪽 유역에서 아르헨티나를 압박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전투가 벌어질 당시 파타고네스엔 많은 아르헨티나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지 않아 브라질의 승리가 점쳐졌습니다. 하지만 마르틴 라카라는 그곳에 있던 가우초와 해적들과 힘을 합쳐 브라질의 공격을 막아냈고, 오히려 500명이 넘는 포로를 잡고 세 척의 배를 빼앗는 등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 승리로 아르헨티나는 전쟁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으며, 남쪽에서 진격하려 했던 브라질 함대의 계획을 완전히 차단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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