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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r 06. 2022

미국-멕시코 전쟁의 서막: 알라모 전투 이야기

 

1836년 3월 6일, 치열했던 알라모 전투가 끝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미국은 서서히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부 지방에 거주하던 미국인들은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지애나로 이주하며 면화 재배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챙겼고, 어느덧 스페인 제국 영토에 속해 있었던 텍사스 지역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1821년 당시 미국 지도 (사진 자료: University of South Florida)


이때 멕시코는 막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멕시코는 1821년에 독립을 이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 스페인 영토였던 텍사스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되었는데요. 이전부터 텍사스에 정착했던 미국인들은 거주 문제를 두고 멕시코 정부와 협상을 벌어야 했고 결국 (1) 스페인어를 쓰고 (2)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조건으로 그곳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국경을 넘어오는 미국 이주민들에게 별다른 적개심이 없었습니다. 1821년까지만 해도 텍사스 땅에는 약 3,500명 정도밖에 살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역 경제의 발전을 위해 멕시코 정부는 오히려 미국인들의 이주를 환영했고, 그 결과 1836년 텍사스 인구는 38,000명까지 증가했으며 그 중 90%가 미국인이었습니다. 


자신을 멕시코에 나폴레옹이라 말했던 산타 아나 대통령 (사진 자료: history.com)


텍사스에서 미국인 이주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동안 멕시코 정부는 자유주의파와 보수파 간의 내부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때문에 몇몇 멕시코 사람들이 멕시코가 미국에게 잃어버린 땅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집안 싸움만 했던 멕시코 정부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중앙정부가 시끄러워지면서 변방에 있는 텍사스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고, 1833년 산타 아나가 집권한 뒤에야 텍사스가 미국에 넘어갈 위험이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835년 산타 아나는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던 미국 이주민들에게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거절했고, 분노한 산타 아나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 상황을 정리하러 나섰습니다. 1836년 2월 멕시코 군대는 알라모에 머물던 미국인들을 포위했고 제임스 보위, 윌리엄 트래비스, 데이비드 크로켓이 이끄는 186명의 미국인들은 마지막까지 항전을 다짐했습니다. 1836년 3월 6일, 186명의 미국인과 3,000명의 멕시코 군은 최후의 전투를 벌였고 2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는 수적으로 우세했던 멕시코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알라모 전투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비록 알라모 전투는 멕시코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은 알라모 전투를 자유를 위한 항쟁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0년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멕시코 전쟁 (1846-1848)에서 미국 병사들은 “알라모를 기억하라 (Remember the Alamo)”는 문구를 외치며 단합을 약속했습니다. 또 200명 남짓한 병사들이 수 천명이 넘는 적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한 내용은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 위한 헐리우드 영화로 여러번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1960년에 개봉했던 영화 알라모 포스터 (사진 자료: Fine Art America) 


한편 미국에서는 알라모 전투에 대한 다른 시선도 존재합니다. 당시 텍사스에 거주하던 미국 이주민들은 일찌감치 노예법을 폐지했던 멕시코 정부의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면화 재배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텍사스 내 노예 제도를 옹호했습니다. 1834년 영향력 있던 미국 이민자였던 스테픈 오스틴은 “텍사스는 노예가 허락되어여야만 한다. 흑인들은 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몇몇 미국 역사가들은 알라모 전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명받지 못한 흑인 노예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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