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Mar 05. 2022

2차 세계 대전, 그리고 미국과 중남미의 평화 선언


1945년 3월 5일, 중남미 국가들은 미주 지역의 연합과 평화를 위한 미주국가연맹 설립에 동의했습니다. 당시 각 국가의 주요 인사들과 외교관들은 멕시코 차풀테펙 궁전에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이것이 UN 설립을 위해 1945년 4월에 열린 샌프란시스코 회담 보다 한 발 앞서 평화를 논의한 차풀테펙 회담이었습니다. 


차풀테펙 법안이 선언되었음을 알리는 당시 신문 내용 (사진 자료: 트위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회담에 참여한 국가들이 협력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각국 대표들은 ‘모든 국가가 경제력이나 국방력에 상관없이 서로 평등한 위치에 있으며, 외부의 침략을 당할 경우 모두가 협력해 주권 보호를 보장해 줄 것’이란 내용에 동의했습니다. 과거 강대국은 이익이 없다면 약소국을 돕는걸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협정에선 각 국가의 이익보다 협력을 훨씬 더 중요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당시 미국 국무 장관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는 “이번 회담은 대륙의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는 국제 협력 발전의 역사적 전환점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미주연합의 역사를 연구한 마누엘은 달라진 미국의 태도에 주목했습니다. 미국은 과거 제국주의 기조를 버리고 미 대륙 국가 모두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회담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미주기구 (OAS)이 만들어지는데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나아가 미 대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미주국가연맹과 차풀테펙 선언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연합군 (미국, 영국)과 주축국 (독일, 이탈리아)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후안 페론이 연합국 편을 들면서 차풀테펙 선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을 선언해버린 멕시코 유카탄 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