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초, 스페인 펠리페 2세는 아메리카 신대륙이 스페인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을 보내 신대륙을 탐험하도록 했는데, 디에고 가르시아 데 팔라시오스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디에고는 과테말라 사법 재판소에서 일하던 판사였습니다. 또 그는 일을 하면서 취미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 탐험가이기도 했습니다. 중미 지역의 지리와 원주민 문화를 자세히 관찰하는 걸 즐기면서, 나중엔 자신의 기록을 담은 답사기까지 출판했을 정도였습니다.
1576년 3월 8일, 디에고는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마야 유적지 코판을 발견했습니다. 참고로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국경 지역 근처에 위치한 코판은 현재 ‘제3대 마야 유적지’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연히 코판에 도착한 디에고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 넋이 나갔고, 곧바로 스페인 황제 펠리페 2세에게 코판의 존재를 알리는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보내면서 디에고는 내심 스페인 본토의 탐사 지원을 기대했습니다. 규모가 큰 고대 유적지였던 만큼, 보물들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코판은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이 넘치는 엘도라도를 찾았다.”, “지상낙원을 발견했다.” 같은 과장된 소문이 많았기 때문에, 디에고의 소식도 하나의 허풍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코판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잊혀졌습니다. 유적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시간이 한참 흐른 1940년에서야 시작됐는데, 그 결과 1,800개가 넘는 상형문자, 달력이 새겨진 석상 등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왜 마야인들이 정글 깊숙한 곳에 피라미드와 신전을 건설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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