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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02. 2022

볼리비아 원주민들에게 ‘땅을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어제 ‘빠차마마의 날’에 이어, 오늘 이야기도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1953년 8월 2일. 볼리비아 정부는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토지 개혁법 (Reforma Agraria)을 통과시켰습니다. 사실상 처음으로 원주민들이 요구하던 권리를 허용한 사건이었는데요. 오늘은 볼리비아에서 이 법안이 제정된 계기와 배경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1950년까지만 해도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태평양 전쟁과 차코 전쟁에서의 계속된 패배로 국력이 쇠퇴한 상황이었는데요. 전쟁 같은 외부 요소 이외에도, 사회적 불평등은 볼리비아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소수의 대농장 지주 (특히 크리오요나 백인들)가 대다수의 농경지를 차지하며 원주민들은 땅이 없었고, 경제적 수익에서도 큰 차이가 나며 불평등 현상이 악화됐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살펴본 멕시코 카스트 전쟁이 마야 원주민들과 토지 지주 사이에서 벌어졌듯이, 볼리비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으며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1952년에 볼리비아를 뒤바꾼 사회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볼리비아에서는 이 사건을 ‘52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중남미 역사 수업에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볼리비아가 이 혁명을 통해 얻으려 했던 건 보편적 투표권 보장, 농부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혁명을 이끌었던 MNR (Movimiento Nacional Revolucionario) 정당은 예나 지금이나 볼리비아의 주요 산업인 광산업을 국유화했고, 이를 통해 한쪽으로 쏠려있던 부의 재분배를 시도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가 한창이던 볼리비아에서, 1953년 8월 2일엔 '토지 개혁법'까지 발표되며 또 한 번 사회를 크게 뒤흔들게 됩니다. 이 법안의 핵심 목표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땅 분배"라는 슬로건을 보면 명확히 드러났는데요. 기본적으로 기업의 토지 소유는 제한하는 반면, 다수를 차지했던 인디언과 농민에게 토지 소유권을 주고 그들이 경제적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토지 분배였던 겁니다. 법이 통과된 이후 더 많은 원주민들이 더 이상 대농장인 아시엔다 (hacienda)가 아닌 자신 소유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유와 자치권을 누리게 됐고, 원주민들 공공 소유지 땅까지 인정해주며 대변화를 이루게 됐습니다. 물론 법 자체에 허점과 함께 강압적이란 비판도 존재했지만, 1953년과 1993년 사이에 볼리비아 영토 총 1억 1000만 헥타르 중 5730만 헥타르가 원주민과 소작농에게 분배되며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게 됩니다.  


한편 볼리비아 정부는 법안이 통과된 걸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 2일을 ‘농업, 생산, 지역 사회 혁명의 날 (DÍA DE LA REVOLUCIÓN AGRARIA, PRODUCTIVA Y COMUNITARIA)’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2007년부터는 원주민의 날 (Día del Indio) 바꿔 이 날을 기념했습니다. 토지 개혁이 원주민들에게 사실상 자유와 다름없는 권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원주민의 날이라는 통합적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날은 볼리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볼리비아 대통령은 매년 연설을 통해 원주민 커뮤니티의 중요성과 함께 토지 개혁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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