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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08. 2022

스페인이 만든 마지막 부왕령: 리오 데 라 플라타


1776 8 8. 지금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우루과이 지역에는 ‘리오  플라타 부왕령’ (Virreinato del Río de la Plata) 새롭게 탄생합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카를로스 3세가 부왕령 창설을 허락하는 증명서에 서명하며 만들어지게 됐는데요. 오늘은 스페인 제국의 가장 마지막으로 설립된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의 짧은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스페인 부왕령의 역사 (사진 자료: redul)


 지도 왼쪽에서   있는 바와 같이, 스페인은 식민지 초기 아메리카 대륙을  가지 부왕령으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미국, 멕시코, 중미 지역까지 뻗어있는 ‘누에바 에스파냐부왕령이었고, 다른 하나는 리마에 중심지를 두고 있는 페루 부왕령이었습니다. 여기서 부왕령이란 새롭게 발견된 땅에 대한 스페인의 권위를 보장하고, 본국의 국왕을 대신하는 직책인 부왕에 의해 통치되는 식민지를 말했습니다. 워낙 광활한 영토였음에도 스페인은  부왕령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식민지를 통치했고, 많은 자원을 으며 부를 확보해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부르본 왕조가 들어서면서  개였던 부왕령은  4개로 나눠집니다. 주요 분할은 남미 대륙에서 일어났는데요. 리마 부왕령 하나였던 남미에선 지금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누에바 그라나다가 탄생했고, 이후 아르헨티나 지역에는 리오   플라타가 만들어집니다. 오늘의 주제인 리오  플라타는 ‘은의 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흐르는  지역에서 유래된 이름이었습니다.


17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도 (사진 자료: researchgate)


스페인 제국이 리오  플라타 부왕령을 새로 창설한 두 가지 이유는 ‘효율성’과 ‘방어’였습니다. 먼저 리마는 라 플라타 지역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통치를 분권화하여 식민지 행정 시스템을 더욱 체계적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있었습니다. 또 스페인 제국은 다른 유럽 국가의 침략에 대한 대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브라질 남부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나가던 포르투갈의 침략을 고려할 , 리오  플라타 부왕령은 군사적 방어가 훨씬 용이할  게 만들 가능성이 높았던 겁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부왕령에 초대 총독 자리엔 페드로  세바요스(Pedro de Cevallos) 임명됐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부를 안정적으로 립했습니다. 한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부왕령이 새로 건설되자, 남미 내에서 부의 이동도 자연스레 이뤄졌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페루 리마를 통해 수출되었던 포토시 광산의 은은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를 통해 대서양으로 보내졌습니다.  플라타 지역의 소금에 절인 고기, 가죽, 목축 제품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며 전례 없는 번영의 시대가 촉발되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가장 마지막으로 탄생했음에도 남미 내에서 빠르게 부를 축적했으며, 상업이 발전하며 독자적인 경제 세력을 이뤄나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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