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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07. 2022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연상케 했던 콜롬비아의 폭발 사고


오늘의 주제는 콜롬비아 칼리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폭발 사고 이야기입니다. 1956년 8월 7일 밤,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있던 군용 차량 일곱 대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사고 현장엔 반경 50미터, 깊이 25미터의 큰 구멍이 생겼고, 약 천 명의 사망자와 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하게 됐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전날인 8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총 20대의 군용 차량은 서쪽의 항구 도시 부에나벤투라 (Beunaventura)를 출발합니다. 이 중 13대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향했고, 나머지 7대는 살사의 도시로도 유명한 칼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120km나 되는 여정 끝에 트럭 일곱 대는 다음날인 8월 7일 칼리에 도착합니다. 병사들은 오래된 기차역 근처에 주차를 해놓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평소와 같은 밤이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굉음과 함께 트럭에 실려있던 1,053개의 다이너마이트 상자가 모두 터져버리는 비극이 발생합니다. 당시 상황을 두고 알폰소 갈비스 목사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폭발 후 하늘엔 버섯구름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규모는 작았지만 마치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터진 원자폭탄과 똑같아 보였다.”



이번 폭발로 칼리에는 규모 4.3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거리가 50km 넘게 떨어져 있는 부가나 팔미라 같은 도시에서도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근처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던 500명의 병사였으며,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민간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건 다음날 교황을 비롯한 미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많은 나라에서 위로 서신을 보내왔고, 폭발이 일어난 25번가와 26번가 사이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희생자를 위로했습니다.


한편 당시 피니야 대통령은 즉시 이를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 규정하고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불과 8 전만 하더라도 보고타소 사건 (보고타에서 가이탄 대통령 후보 암살 이후 벌어진 폭동) 벌어지며 정세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폭발 사고를 자신에게 반대하정치적 보복 행위로  것입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잘못 총을  군사의 잘못이거나 트럭 과열로 인한 사고로 무게를 뒀습니다. 지금도 칼리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십자가가 그대로 세워져 있으며,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당시 사건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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