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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Dec 15. 2018

#2 아르헨티나의 환율과 물가 이야기


둘째 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맑은 하늘 (no 미세먼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이미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어있었다. 피곤함에 술기운까지 더해져 깊은 잠에 들었다가, 하루의 절반이 지나서야 깨어난 것이다. 피곤했지만, 하루를 통째로 날리기 전에 얼른 몸을 일으켰다. 둘째 날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바로 아르헨티나 돈을 구하는 일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던, 그 나라 돈을 환전하는 일은 가장 첫 번째로 하게 되는 필수 업무? 중 하나다. 나는 마실 물, 먹거리, 세면도구와 같이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페소 (peso)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돈을 구하러 집을 나섰다. 



환전


아르헨티나에서 환전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느 다른 해외 국가에서처럼 ATM기를 사용하는 법이고, 두 번째는 달러나 유로를 아르헨티나 돈으로 환전하는 방법이다. 사실 ATM기에 가서 돈을 뽑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문제는 돈을 뽑는데 드는 비싼 수수료다. 얼마의 금액을 찾든 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한화로 약 8000-9000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뺏어간다 (물론 은행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는 강도나 다름없는 은행에서 수수료를 주느니, 우선 한국에서 가져온 달러를 환전하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우리는 환전을 하러 대부분 '은행'으로 간다.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신분증을 보여준 후, 그날 환율에 맞춰 환전을 한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대다수의 여행객들은 환전을 할 때 은행이 아닌 '라 플로리다' (La Florida) 거리로 간다. 아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했던 분들은 이 거리가 친숙하게 들릴 것이다. 은행이 아닌 이 플로리다 거리로 가는 이유는, 좋은 조건에 환전을 하여 더 많은 페소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거리


플로리다 거리 앞 카테드랄 지하철 역


플로리다 거리는 우리나라의 명동과 같은 거리다. 이 거리에는 각종 명품 화장품 가게, 옷가게, 디저트 가게, 커피 체인점, 그리고 백화점들이 즐비해있다. 축구 강국답게 메시의 이름이 새겨진 축구 유니폼을 쉽게 볼 수 있고, 전 세계 축구 클럽 유니폼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브라질 사람들이 유독 많다. 아르헨티나에 비해 물가가 비싼 브라질에서, 사람들이 돈을 저축해 놓고 벼르다가, 휴가 때 아르헨티나에 놀러 와 물건을 잔뜩 사 가기 때문이다.


대통령 궁 카사로사다에서 플로리다 거리 가는길의 풍경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이는 이 플로리다 거리가 특별한 점은 바로 '깜비오! 깜비오! 를 외치는 환전 알바들 때문이다. 그들은 특이한 목소리로 거리에서 “깜비오!, 깜비오!”를 외치는데, 이는 스페인어로 "환전!" "환전!"이라는 뜻이다. 


이곳 환전 알바들의 별명은 일명 '미니 나무' (los arbolitos)다. 우리나라에서 초록색 만원 짜리를 '배춧잎'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에선 초록색 달러를 '이파리'로 표현한다. 따라서 많은 달러를 가지고 있는 환율 삐끼들을 두고 미니 나무 (los arbolitos)라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이다. 




플로리다 거리의 알바들은 은행의 공식환율을 따르지 않는다. 이곳에선 암환율 법칙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또한 많은 양의 달러 혹은 유로를 거래한다면, 딜을 통해 더 좋은 조건으로 아르헨티나 페소를 얻을 수도 있다. 은행의 공식 환율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위조지폐가 섞여 나올 확률이 있으므로 무조건 플로리다의 암 환전이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던 2013년 당시에는 공식환율과 암 환율의 차이가 크게 났다. 공식환율이 1달러에 약 5페소라면, 암환율은 약 8페소에서 9페소 정도였다. 따라서 이때 달러를 가진 여행객들은 더 많은 페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페소들로 값싸게 음식재료를 사고, 외식을 하고,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배낭 여행자들에게 장기간 머물기 좋은 도시로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의 암 환율은 더 이상 4년 전의 암 환율이 아니었다. 공식환율과 암환율의 차이는 고작 1페소 미만이기 때문에, 플로리다 거리에서 환전하는 메리트가 사라진 셈이었다. 여전히 활발하게 깜비오를 외치는 알바들이 있었지만, 4년 전보다는 확실히 그 수가 줄어든 모습이었다. 나는 2013년에 나와 거래를 했던 알바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러 플로리다와 라 바예 (La Valle)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가보았다. 하지만 그가 항상 지키고 있던 자리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공식환율과 암환율의 차이가 없어진 이상, 환율 장사는 매력적인 비즈니스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이었다. 


공식환율? 암 환율? 


아르헨티나라는 나라가 생소한 분들은, 암환율의 개념이 조금 헷갈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나 다른 대부분에 국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체 아르헨티나의 암 환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아르헨티나 국립은행


이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때 남미에서 제일 잘 사는 국가였던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 이르러 미국의 경제대공황에 버금갈 만큼의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게 된다. 1달러당 1페소를 유지했던 환율은 겨우 며칠 사이에 1달러에 4페소가 되고, 페소로 저축을 해 둔 사람들은 큰돈을 잃게 되었다. 당시 경제부 장관이었던 카바요 (Domingo Cavallo)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아예 달러 거래를 못하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달러를 인출해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 초강수를 썼음에도 경제 위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르헨티나는 약 93조 달러에 달하는 돈을 갚지 못하며 국가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한마디로 아르헨티나 판 '국가 부도의 날'이 벌어진 것이었다.


최악의 경제 위기 이후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아르헨티나를 다스렸던 좌파 정권 네스토르 키르치너 (2003-2007)와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2007-2015) 정부는 고정환율을 만들었다. 그들이 집권한 이후, 아르헨티나는 원자재 수출 붐 (Commodity Boom)을 타고 서서히 경제 회복하는 중이었다. 나라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수출을 통한 달러를 최대한 많이 사들이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1달러당 2~3초 반대의 아르헨티나 페소 고정환율을 지정한 것이었다. 또한 모든 아르헨티나 은행과 ATM에서 달러를 인출을 금지했다. 이는 키르치너 정부는 최대한 이 고정환율 제도를 유지함으로써 달러를 유출시키는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림으로써 외화 수익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아르헨티나에는 정부가 지정한 공식환율, 그리고 아르헨티나 페소의 달러 대비 실제 가치를 책정한 암환율 두 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멈추지 않는 인플레이션 


그러나 이러한 고정환율 제도는 부작용이 많았고, 결국 2015년에 우파 이념을 기반으로 한 마크리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지되고 만다. 이제 키르치너 정부가 임시로 정해놓은 고정 환율은 사라졌고, 아르헨티나 페소의 실제 가치를 적용한 환율이 나타났다. 따라서 2015년 12월 공식환율이 시행되었을 때, 1달러당 약 9.8 페소를 기록했던 공식 환율은 마크리 정부 이후 1달러당 14.2 페소로 30%가 넘게 올랐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1달러에 1000원 하던 환율이 하루아침에 1300원이 넘게 바뀐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르헨티나 화폐 


내가 두 번째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을 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바로 이 아르헨티나 화폐가치의 변화였다. 불과 4년 사이에 슈퍼마켓, 상점, 식당, 서점 어디서든 가격이 너무나 많이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당시 나에게 100페소는 큰돈이었다. 그 돈으로 넉넉하게 먹을 재료를 사고, 군것질까지 할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2017년의 같은 100 페소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 먹기에도 부족한 돈으로 변해있었다. 고작 2페소였던 버스 가격도, 2017년에는 7.5페소로 올라있었다 (2018년에는 12페소로 올랐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자, 정부는 2017년 말, 1,000페소 지폐를 새로 발행하기도 했다. 


마크리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


물론 이러한 인플레이션 변화는 외국인이었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바람에 집 월세를 조금 더 싸게 내며 이득?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은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페소로 월급을 받는 친구들은, 월급의 가치가 인플레이션만큼 하락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축을 하기보다, 돈을 바로 쇼핑이나 식재료를 사는데 써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저축을 한들 무엇하리,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저축이 더 손해를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올해 10월에는 마크리 정부가 IMF에 손을 벌려 재정지원을 신청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며, '다시 한번 아르헨티나에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한때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톱 7에도 들며 유럽 국가들도 부러워 할만 한 부유한 국가였던 아르헨티나. 옛날에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고, 아르헨티나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다음 글은 '아르헨티나의 부유했던 경제가 왜 망가졌는가'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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