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서울까지, 나는 왜 걸었는가

2018년 12월 12일부터 27일까지, 460km의 기록

by 김정환

나라는 사람은 워낙에 추상적이다. 어려서부터 역사나 철학적 주제, 혹은 인생론에 탐닉했다. 대학의 전공도 정치학이었다.


그러다보니 삶의 구체적인 부분들에 취약하다. 경제관념도 없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 게으름에 노자를, 우유부단에 붓다를 끌어들이는 아전인수도 허다하다.


추상과 구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추상적 사고는 방향을 제시하고 성찰과 반성에 유용하지만 공허해지기 쉽다. 모든 추상성은 본래 구체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리법만 알고 미각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여행은 추상과 구체의 균형을 잡는 최적의 기회다. 머리로 알던 것을 몸으로 알게 된다. 동시에, 감각으로 스쳐 지나갈 것들을 정리하고 간직할 수 있다. 예전같으면 문무의 겸비, 요즘은 문이과 통합이 대세지만 나는 이론과 현실, 추상과 구체의 균형을 지향한다.


그러려면 여행도 속 편한 관광이어서는 안 된다. 가급적 세상과 부대끼는 여정이 필요하다. 도보 여행이야말로 그처럼 '사서 하는 고생'으로 안성맞춤이다.


사람들은 걷는다고 하면 산티아고를 떠올린다. 거기까지 안 가도 된다. 사서 하는 고생길이라면 국내에도 널려 있다. 서울의 성곽길, 부산의 갈맷길, 제주도의 올레길 등 요즘에는 정비도 잘 해 놓았다.


내가 택한 건 '영남길'이다. '영남대로'라고도 한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천리의 장정이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향해 가던 길,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오르던 길이다. 수많은 장삼이사들의 땀과 눈물로 닦인 길이다.


지금은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덮여 옛길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국도와 지방도를 더듬어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 걷고 보니 460km에 이른다. 15박 16일, 하루 평균 30여 킬로미터씩 걸어 왔다.


그래서 나는 추상과 구체의 균형을 갖추게 되었는가? 발바닥은 여전히 얼얼하다. 그러한 구체의 순간을 기억으로 정리하는 건 지금부터 추상의 역할이다. 추상과 구체의 협업, 그 보름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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