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부산역에서 범어사역 인근까지

2018년 12월 12일

by 김정환

2018년 12월 12일 오전 9시에 집을 나섰다. 서울역에서 10시에 출발하는 부산행 KTX 121편을 예매해 두었다.


이번 도보여행의 기준이 되는 길은 '영남대로'다. 조선시대까지 한양의 숭례문과 부산(정확히는 동래 읍성)을 연결하던 옛길이다.


아스팔트가 덮이고 새 길이 뚫려 지금은 옛길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길이 만든 마을과 역사를 꼭꼭 밟아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일이다.


마침 도보여행가 신정일 님이 쓴 <영남대로>라는 책이 있었다. 영남대로의 옛 자취를 더듬어 남긴 기록이다. 좋은 참고가 될 것인데, 아쉽게도 절판된지 오래다.


검색 끝에 부산의 알라딘 센텀점에서 중고 한 권을 찾아냈다. 하지만 부산역에 내려 거기까지 다녀오기엔 시간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 첫날 목표지점인 노포동까지는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쉼없이 걸어도 빠듯하다.


단념하려다 지하철 안에서 묘안이 떠올랐다. 부산에 있는 심부름 서비스를 검색했다. 그중 한 곳에 전화를 걸어 '여자저차한 책을 사서 12시 40분까지 부산역으로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했다. 요금 3만 원과 책값 8,900원을 더해 계좌로 보냈다. 시간을 사는 것이니 돈은 아깝지 않았다.


부산역 안내데스크 앞에서 만나 책을 건네 받았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멀리 있던 책을 손에 쥐게 되다니, 자못 신기하다.



이날 부산은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부산역 광장을 배경으로 대장정의 시작을 기념하는 사진을 남긴다.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부산역 맞은편 밀면집에서 밀면과 만두로 속을 든든히 채웠다.



1시 20분, 드디어 출발이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 내게 여행이란 낯선 세상과 만나면서 생각과 감성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그러기에 부산역 근처는 아무래도 낯이 익다.


하지만 출발한지 십여 분만에 '여행'을 실감한다. 높은 담장 아래로 경계를 선 경찰과 쓸쓸한 표정의 소녀를 만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이다. 그렇다면 담벼락의 정체는 일본 영사관일 것이다.



부산 영사관 앞의 이 소녀상은 2016년에 설치되었다가 철거, 재설치되는 곡절을 겪었다. 일본 정부의 반대 및 한일 위안부협정과 얽힌 외교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비판적인 국내 여론은 특이하다. 이들은 대개 위안부 문제 활동가들을 '종북'으로 규정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위안부 사태가 과장, 왜곡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합리적 논의를 위해서는 해당 주제와 직결된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병영 내 스마트폰 사용을 고려한다면 '장병의 편의'보다는(그것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고려는 하되) '전투력 보존'이라는 가치에 가중치를 두면서 절충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좌우 이데올로기'적 관점보다 '인권'이 중심 가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소녀상에는 다양한 상징들이 담겨 있다. 그건 보수와도, 진보와도 무관한 인간의 아픔이자 비극이다.


이렇게, 소녀상을 만나면서 비로소 이번 '여행'이 시작되었다.



소녀상을 뒤로한지 오래지 않아 부산진역을 지난다. 예전에는 무궁화호도 정차했던 중량감 있는 역이었으나 KTX가 등장하면서 여객업무가 중단되었고 지금은 화물만 취급하고 있다.


역사 바로 앞에 무료급식소가 다. 급식소와 이어진 길에는 종이와 돌이 늘어서 있는데 그 용도를 짐작할 만하다. 거리에 굴러다니던 전단지 한 장, 돌멩이 하나가 특정한 공간 안에서는 순서와 질서의 상징이 됐다. 한참은 남았을 저녁때를 기다리며 노숙인 한 분이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쌀쌀하다. 얇은 패딩 위로 윈드브레이커를 덧입었다. 겉옷은 이게 다다.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벌은 속옷 몇 만 챙겼다. 다행히 여행 마지막날을 제외하면 큰 추위가 없었으니 날씨 운은 아주 좋았다.


문득 길 오른편으로 입체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물길과 기찻길, 그리고 육교가 한 장소에 모였다. 전후와 좌우, 상하의 공간감이 재미있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육교 아래로 기차가 지나간다.

사진을 찍고 나서야 영화에 나왔던 곳임을 알리는 입간판을 보았다.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께 대들었던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가 가까스로 퇴학을 면하고, 기분 좋게 극장까지 달려가는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넘어가던 육교가 바로 저기다.


이 장면이다. (사진출처 : http://www.7luckhouse.com/201401/energy_2.jsp)

오늘 일정은 부산 지하철 1호선과 거의 일치한다. 가구점이 많은 좌천동 거리, 예전에 일없이 밤거리를 배회했던 서면역 근처를 지나 송상현 광장에 이르렀다.


광장은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이 언덕이 부산부와 동래군의 경계 역할을 했다. 송상현은 임진왜란 때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빌려달라'던 일본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며 항전, 장렬히 전사했던 당시 동래부사다.



송상현 광장을 올라가던 때부터 오른쪽 발바닥에 물집성 통증이 왔다. 각오한 일이지만 너무 이르다. 광장 한켠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고 살피니 발바닥 중심부가 발갛게 달아 올랐다. 양말이 너무 얇아 그런가 싶다. 우선 신발 안에서 발이 놀지 않도록 끈을 단단히 조이고 추이를 살피기로 했다.


때마침 양정역 근처 노점에서 두툼한 양말을 발견했다. 그런데 두 켤레에 7천 원이라니, 노점에서 파는 양말 치고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14,000원에 네 켤레를 샀다. 추운 날이다. 목도리를 둘둘 두르고 비닐봉지에 양말을 담는 노점 부부에게 한두 푼 깎겠다고 실랑이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손해보는 마음으로 살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날 양말을 산 건 신의 한 수였다.


에너지 보충도 할 겸 교대(부산교대)역 근처 스타벅스에 들렀다. 달달한 음료 한 잔을 주문하고 양말을 갈아 신었다. 대만족이다. 두툼한 것이, 헐겁던 발을 꼭 잡아주는 느낌이다.



길은 동래 방향으로 접어든다. 오늘의 목적지는 부산의 북쪽 끝자락, 노포동 종합터미널 근처다. 그래야 내일은 아침부터 부산을 벗어나 양산 방면으로 향할 수 있을 터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중에 문득, 부산역으로 책을 가져다 준 심부름 서비스 아저씨는 어떤 일까지 해 보았을지 궁금해졌다.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할 신기한 경험도 많지 않았을까?


영업적인 용무도 아닌데 선뜻 물어보기가 주저됐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배짱을 빌어 전화를 걸었다. 우선 제때 책을 가져다 주신 데에 대해 한 번 더 감사를 표한 후, 혹시 일을 하시면서 힘들었거나 인상깊었던 경험을 들어볼 수 있겠느냐고 정중히 물었다.

의외의 질문에 잠시 당황하셨지만 생각을 다듬어 두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2018년 여름에 부산 시민공원에서 열린 공연 입장을 위하여 하루종일 앉아 있었던 것. 40도를 넘나드는 땡볕 아래 종일 버텨야 했던 그 고충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제일 인상깊었던 일로는 지방에 있는 딸을 대신해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 온 것을 꼽았다. 아침 일찍 어머니 댁으로 찾아가 하루종일 보호자 역할을 한 뒤 집까지 모셔 드렸는데, 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한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혹 불륜과 치정의 스펙타클 따위가 있지 않았을까, 슬몃 기대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통화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동래역 앞까지 왔다. 광복동이나 서면만큼은 아니나 이 근방도 꽤 번화가다. 외지인은 '동래'라고 하면 '동래파전'이나 '동래온천'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파전이나 온천으로만 동래를 기억하는 건 동래에 대한 모욕이다. 지금은 부산의 하위 행정구역이지만 조선시대까지는 '동래'가 '부산'보다 더 큰 지명이었다. ('부산'은 배가 드나들던 부산포 인근을 부르던 이름이다.) 동래의 중심은 지금 지나는 동래역 인근의 동래 읍성이다. 그러니 이 동네가 사실은 오늘날 부산이라 부르는 지역의 맏형인 셈이다.


여정의 첫 날, 아직은 표정에 여유가 있다.

온천과 숙박업소가 빼곡한 온천장역을 지나 부산대역 근처까지 왔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추억의 장소를 더듬어 본다.


20대 초반의 어느 여름날, 친구와 함께 부산대 앞 어느 주점에서 '언어가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를 두고 턱없이 치열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세기의 토론(?)장이 아직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거리가 변했거나 기억이 너무 멀다. 벌써 20년도 전이다.


다행히도 친구와 나는 여전히 절친이다. '그 때 그 주점 찾아보려 했는데 안 보이네' 카톡을 보내면서 부산대 앞을 벗어났다. '그 때 그 주점'을 못 찾으면 어떤가. '그 때 그 친구'와 아직까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여행을 다녀 보면 부산의 문화에는 위트가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언젠가 부산 지하철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금하는 캠페인 포스터를 보다가 빵 터졌다. 정말 '그러고싶지 않게' 잘 그렸다. 딱딱한 문구보다 효과 만점이다.


사진출처 : 부산교통공사 페이스북 홈페이지

장전역 앞 '따쉼터'도 그랬다. '따뜻하다'를 경상도에서는 '따시다' 혹은 '따숩다'고 한다. '따쉼터'는 경상도 사투리의 뉘앙스를 재치있게 잘 살린 바람막이다. 이런 시설을 내가 사는 서초구에서는 '서리풀 이글루'라고 부르는데 왠지 더 추워 보인다.



6시 반이 넘은 시각, 지하철 기준으로 네 정거장 정도는 더 가야 한다. 휴식 겸 식사가 필요했다.


부근에 적당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 맥도날드로 들어섰다. 사실 여행 중 패스트푸드점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메뉴를 주문하고, 맛보다는 칼로리에 힘을 얻어 다시 걷는다.


8시 넘어 범어사역 앞까지 왔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북쪽 종점인 노포역 바로 전이다. 내처 노포까지 걷고 싶었지만 노포역 인근에는 마땅한 숙소가 검색되지 않았다. 이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숙소를 찾아 본다.


쉬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니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감이 급속히 몰려왔다. 무거운 다리를 끌면서 지도상 주택가 한 가운데로 표시된 모텔을 찾아 올라갔다. 의외로 깨끗하고 시설이 괜찮다. 30분 정도만 더 올라가면 부산의 유명한 사찰 범어사라니, 범어사 방문객들이 묵기에도 좋았다.


숙박비 4만 원을 지불하고 방에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의 '염색금지' 안내가 이채롭다. 굳이 모텔까지 와서 염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집에서 하려면 물값이 많이 들기 때문일까? 그렇다 해도 물을 4만원 어치나 쓰지는 않을 터인데(설령 대실이라 해도),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나와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첫 날 진도로는 나쁘지 않다. 부산역부터 범어사역 인근까지, 대략 2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자리에 누워 <영남대로>를 읽으며 내일 일정을 예상해 본다. 저자는 첫날 아침 동래 향교에서 출발해 양산의 물금 근처까지, 둘째날엔 밀양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서울에서 내려와 낮부터 일정을 시작한 나는 그들과 일정을 완전히 맞추기가 어렵다. 내일은 대략 삼랑진 정도를 목표로 삼으면 될 것이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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