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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Feb 23. 2023

[오늘의 私설] 전진무의탁과 '바라지 않는 마음'


 저출산 시대인 지금은 독자(獨子)가 흔하지만 내가 신체검사를 받았던 1993년까지 2대 독자는 보충역 판정 사유였다. 공익근무요원제도처음 시작 1995년 4월에 4주간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짧았기에 또렷이 남은 교육 중 하나가 ‘전진무의탁’이다.


 전진무의탁은 은폐나 엄폐물 없이 무엇에도 의탁하지 않고 전진하기 위한 사격자세. 실전에서 효용이 있나 싶긴 해도(지금은 폐지되었다고 한다) ‘전진무의탁’이라는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세라니.


 그건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때로는 안전한 바위 뒤에 숨을 수도, 참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의탁할 곳이 없어도 나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무의탁’의 자세를 일상의 말로 바꾸면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면 상대가 그걸 해줄 때야 기쁘겠지만 반대의 경우 실망하게 된다. 나의 행복이 상대의 처분에 달린 셈이다. 그렇게 삶의 주도권을 잃고서 앞으로 나아가기는[前進] 어려울 터.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자유롭다.


 기회가 되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소에 가볼 생각이다. 그리스의 남쪽, 크레타 섬에 있다고 들었다. 그도 이러한 삶의 진실을 알았다. 무의탁으로 전진했던 삶의 전사(戰士)가 묘비에 남긴 말은, 전진무의탁의 일상 교본으로 삼을 만하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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