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私설]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
사진 : 나무위키
내가 다녔던 서울고등학교는 그 옛날 끗발이 대단했다. 경기고등학교와 쌍벽을 이루는 초일류 명문이었다. 나는 평준화 이후 1990년에 ‘뺑뺑이’로 들어갔지만, 그 때에도 경희인(옛 서울고등학교가 있던 경희궁터에서 따온 이름)으로서의 자부심은 여전했다.
서울고의 교훈은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이다. 초대 교장이었던 김원규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얼마나 애교심이 컸으면 나이 50인 지금도 교훈과 초대 교장의 이름을 기억한다.) 10대 후반 고등학생에게 세 마디는 그냥 좋은 말이었다. 뭐, 잘 씻고, 지각하지 말고, 책임질 만한 일이 별로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살라는 말이겠지.
설날을 맞아 올 한해 삶의 방향을 모색하다 보니 경희인의 세 가지 모토가 얼마나 값졌는지 새삼 감탄한다. 깨끗하자는 건 청결의 의미 이상이었다. 부지런하라는 것은 열등감을 넘어설 수 있는 열쇠였다. 책임지자는 건 자신의 역량을 키워낼 마법의 주문이었다.
깨끗하자 - 살다 보니 깨끗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장을 모면하려 한 번 내뱉은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선의의 거짓과 악의의 거짓조차 구분이 어려웠다.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기도, 나를 포장하지 않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깨끗하지 않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거울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깨끗해야 했다. 그래야 세상과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음을, 그것이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 것인지를, 깨끗하지 않을 일이 별로 없던 10대에는 잘 몰랐다.
부지런하자 - 열등감에 빠질 일도 많았다. 돈 잘 버는 놈, 학벌 좋은 놈, 박식한 놈, 몸 좋은 놈, 내가 하고 싶은 걸 용케도 잘 하고 있는 놈... 부지런함이 그런 열등감의 해독제가 될 수 있었다. 할 만큼 다 하고서도 안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순간에 도달하면 러너스 하이와 같은 현자의 호르몬이 나왔다. 뿌듯한 체념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눈꼴 시던 놈들보다 앞서 있기도 한데, 그마저도 호르몬 덕인지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진다.
책임지키자 - 책임은 피하고 편하고만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세상의 진리는 역설 속에 있었다. 책임은 언제나 버겁다. 그 무게로 삶의 자유마저 구속되는 것 같다. 그런데 책임을 지키자니 어쩔 수 없이 근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이다. 끝내 책임을 지키고 나면 나의 역량도 불쑥 커져 있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역량과 가능성이 많은 상태,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결국 책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었다.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 30년이 지나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풀어본다. 떳떳하자, 열등감에서 벗어나자, 자유롭게 살자. 중학교 때 읽은 책에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가 있었다. 나는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그 때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지금도 굳건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서울고등학교 교훈 비석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