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우리 반에서 '노래' 하면 나였는데, 나보다 노래를 잘해 은근히 시기했던 녀석이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 오셨다. 어머니는 우리 얼굴에서 아들의 흔적이라도 찾을까, 그럴수록 도리어 흐려지는 눈으로 우리를 둘러 보셨다. 노래를 잘했던 친구의 한 생이 고작 14년만에 멈췄다.
고1때는 처음으로 친구 아버님의 빈소를 찾았다. 항상 교실에서 장난치며 뒹굴던 친구를 상주로 마주하기가 어색했다. 그 슬픔을 공감하기에도 나는 너무 어렸다. 내가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된 고통을 그때 그 친구는 어떻게 견뎠을까. 우리가 17살이었으니, 그 아버님의 연세도 50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즈음 가수 김현식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2세. 그의 사망 후 나온 앨범이 '내 사랑 내 곁에'였다. 1996년 1월에는 첫 휴가를 맞아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알았다. 그 역시 30대 초반이었다. 사춘기 내 감수성의 대주주들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등졌다.
언젠가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을 들렀을 때 그가 40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걸 알았다. 그때 내 나이가 마흔 하나였다. 불후의 전설로 남은 동생(?) 앞에서 자괴감이 들었다. 미술관을 나서며 무언가를 다짐했던 기억은 있는데, 이렇다할 것 없이 시간은 또 흘렀다.
그러다가 김광석과 비견될 만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가수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던 날,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홀로 술잔을 들어 형을 추모했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작년에는 배우 이선균 씨가 세상을 떠났다. '빠른 75'로 74년생인 나와 동갑내기인 그가 굵직굵직한 작품을 남기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광석이형과 해철이형보다는 더 살았다지만, 형돈이 - 중1때 떠난 친구의 이름 - 처럼 그의 죽음도 황망하기만 했다.
오늘 나의 만 50세 생일, 서교동 성당 저녁미사 중 문득 지금껏 살아 온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50년이다. 2002년 월드컵이 바로 엊그제인데, 내가 태어난 날부터 22년을 되감으면 한반도는 전쟁 중이었다. 나의 탄생은 전후 복구 작업의 일환이었다. 나와 동갑내기는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워터게이트, 그리고 서울 지하철 개통이다.
그러니 격동의 현대사 50년을 무사히 살아 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닌가. 위대한 뮤지션이나 예술가가 되지는 못했어도, 별로 이룬 것 없이 후회만 가득해 보일지라도, 그렇다. 기적은 틀림 없는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