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私설] 계엄령은 '자폭 전략'이다

by 김정환

아니, '계엄령'이라니. '포고령'이라니. 2024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부터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까지, 꼬박 세 시간을 TV 앞에붙어 있었다. 베란다 밖으로 헬기 소리가 들렸고, 북쪽으로 멀어지던 군 헬기는 곧 국회 앞마당에 내려앉았다. 투표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모이고 있다는데, 설마 개회를 무력으로 막으려는 것일까?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정문에서 진입을 시도하다 제지당하자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2024년 대한민국에서.


마음은 다급한데 국회 본회의는 좀체 열리지 않았다. 정족수는 채웠으나 안건 상정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국회 의장이 화면 오른편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동안, 왼쪽 절반의 화면에서는 국회의원보좌관들이 군인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몸으로 막으면서 소화기를 뿌리고 있었다. 군인들이 본회의장에 들이닥쳐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거나 회의 진행을 저지하기 전에 빨리 투표가 이뤄져야 할텐데. 설마 총을 쏘는 건 아니겠지. 영화도 아닌 실제 상황에서, 이토록 애가 탄 적이 또 있었던가.


기다림에 비해 투표는 싱거울만큼 신속하게 진행됐다. 재석 190에 찬성 190. 계엄령은 만장일치로 해제되었고 나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놀란 마음은 금세 돌아오지 않았다.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자라면,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닌가. 같은 생각이었는지 국회의원들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법률상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해제를 선포해야 한다. 하지만 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지 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통령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의 참모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이번 사건에 대하여 앞으로 수많은 분석과 평가가 이뤄지겠지만 지금 나의 관심사는 그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이다. 정말로 그가 목소리를 높였던 '반국가세력(실은 야당을 말하고 있었다)'을 소탕할 작정이었을까? 석연치 않다. 계엄 해제의 요건은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이다. 자신이 '반국가 세력'이라 불렀던 야당이 과반 의석을 훌쩍 넘기고 있는 상황을 그가 간과했을 리 없다. 설령 계엄에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포고령 정치'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자기 손으로 수사했던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 본 사람이?


누군가는 '바보, 멍청이'식의 인신공격으로 사태를 설명하려 하겠지만 이 역시 설득력 있는 분석은 아니다. 인격에 대한 비난은 손쉽기는 하나 사태의 본질을 바로 보는 데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나의 짐작은 '자폭'이다.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할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은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유력한 건 주변의 정치적 요구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난 대선에서 반 문재인 바람을 탔을 뿐 스스로 구축한 정치적 세력이 없던 후보 윤석열은 집권 이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수많은 '주주'들 - 가깝게는 부인에서부터 넓게는 각종 정치 세력까지 - 로부터 날아오는 끊임 없는 청구서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능숙히 다루기에는 그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을 터,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그의 헛발질과 미욱한 국정 운영들이다. 지지율이 10%대에 머무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만 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주주'들이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엄령은 어쩌면 그가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하나의 자폭 전술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 예상이 맞다면 머잖은 시기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당장 내일 아침,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 계엄 선포로부터 해제 요구안 통과까지 불과 세 시간 남짓 동안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여파는 가히 역사에 남을 만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의 私설] 반세기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