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출처: 더타임즈
올해 만 50세인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세계적 문화강국으로 주목받는 현상이 신기하다. 학창시절 우리나라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중진국',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따위였다. 초등학교 때 63빌딩이 완공되었는데 '아시아 최고'라는 말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 정상급 성과를 보인 건 기능올림픽정도다. 기계조립, 프레스, 배관의 금메달리스트들이 목에 화환을 두르고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에 대한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
그런데 한 세대만에 사정이 바뀌었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러 몰려온다. 한국 드라마가 그렇게 재미있고 한국의 뮤직비디오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는 것인데, 대체 그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몇몇 전문가들이 이유랍시고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한 발 앞선 인터넷 인프라, 심지어 한국인들의 문화 DNA를 들먹이곤 했지만 사후적으로 갖다 붙인 얘기로 들릴 뿐, 미래를 예측할 만한 설명력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경상남도 양산의 거리를 걷다가 나름의 답을 찾았다. 양산은 아파트숲에 비해 신기하리만치 오가는 사람이 적은 곳이다. 가장 번화가인 양산역 근처 '젊음의 거리'도 한적하다. 문화의 중심지에 사람이 없다는 어색함 속에서 그러니 문화의 핵심 변수는 결국 사람, 구체적으로 '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곳에서는 일어나는 일도 적다. 반대로 사람들이 북적대며 온갖 희로애락을 뒤섞는 곳, 벼라 별 세상만사가 벌어지는 곳은 '문화의 원자로'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의 급속한 성장에도 인구적 요인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1971년 생이고 그 뒤로 70, 72, 73, 74, 75년이 뒤를 잇는데, 잘 나가는 한국 문화의 주역도 대부분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YG의 양현석과 JYP 박진영이 1971년, 하이브의 방시혁이 1972년 생이며 <도깨비>와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가 1973년 생이다. 한강 작가는 1970년, 살짝 벗어났지만(?) 봉준호 감독은 1969년에 태어났다.
물론 사람이 많으니 그 중에서 문화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좁은 땅에서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이들은 양적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대단히 응축된 한반도를 살았다. 거기서 빚어지는 '문화적 방사능'에 피폭된 세대가 한국 문화의 위상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아이돌이나 화려한 배우가 한류의 주역이 아니다. 그들 뒤에서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가수로 키워낸 사람들, 이들이 대부분 70년대 베이비붐 세대다.
이러한 인구학적 설명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도 유용할까? 그럴 것이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저출생은 곧 문화적 생산력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과 산업화에 따른 인구 폭증의 비정상적 상황에서 문화의 잠재력도 비정상적으로 커졌듯이,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는 그 힘이 빠르게 꺼져버릴 것이다. 한국 문화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예측하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짧은(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기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그건 문화의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로서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단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전 세계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면, 나도 한류 붐이 꺼지기 전에 'K'가 붙는 무언가를 생산해 볼만도 하지 않은가? 나 또한 한국 문화의 원자로를 거친 1970년대 생이니, 잠재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