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후회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로 멋들어진 시를 남겼지만, 내게 가지 않은 길은 종종 후회와 회한의 대상이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보았으나 '후회 없이 사는 법' 류의 자기계발서는 있어도 이미 벌어진 일로 고뇌하는 사람을 위한 책은 드물었다. 아무리 대비한들 삶에서 후회할 일이 생기는 건 불가피한데 이를 다룬 책이 없다는 건 의외다. 그래서 내 스스로 처방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하여 '후회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다.
후회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기에 선택 이후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인간은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후회를 한다. 주식을 팔지 않은 것, 아파트를 사지 않은 것, 결혼에 대한 후회는 그 종목이나 아파트의 현재 가격, 결혼 생활의 만족도와 관계 깊다. 한때 가능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선택지가 못내 아쉽다.
그런데 제때 주식을 팔았거나 아파트를 샀다면 나는 정말로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면, 혹은 다른 이와 결혼했다면 더 행복했을까? 다른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 말하자면 '다른 우주'를 넘나들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있다. 다른 우주로 가볼 수는 없어도 그 길의 내가 이 길의 나보다 더 행복할 것인지 가늠해 볼 방법은 있다는 뜻이다.
잠시 막스 베버(1964-1920)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살펴 보자. 책에서 베버는 칼뱅의 예정설이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이러하다. 종교개혁가 칼뱅(1509-1564)은 구원 받을 사람이 신에 의해 일찌감치 정해져 있다고 가르쳤다. 이에 따라 '내가 구원의 대상으로 예정되었을까' 궁금해진 인간은 구원의 표징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직업에서의 성공이다. 직업은 신이 준 소명이므로 이를 잘 수행해 냈다는 것은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임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 유럽인들은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았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자본이 서구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었다는 게 막스 베버의 주장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자신이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으나 간접 증거로서 직업적 성공이라는 단서를 찾았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의 속성이 현재와 미래에 걸쳐 동일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구원받을 자라면 현재도 그러한 자일 것이며, 그 속성이 직업적 성공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를 통하여 미래가 짐작된다.
같은 논리를 후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후회는 과거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으리라는 상상, 적어도 덜 힘들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선택지는 달라도 이 우주와 저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의 속성은 같기에 내가 지금 사는 모습을 통하여 다른 우주에서의 내 모습이 짐작된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건 다른 세계의 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굳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할 이유도 사라진다. 다른 선택이 더 나았으리라는 후회의 전제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후의 조건 역시 달라졌을 것이므로 지금보다 행복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예컨대 그때 주식을 높은 값에 팔았다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졌을 것이고, 지금보다 삶의 질도 나았으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이치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하나의 사건은 반드시 다른 사건을 낳는다. 막상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변수들이 그로부터 파생되었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플러스가 되는 요인도 있겠지만 마이너스가 되는 요인도 있을 것이며, 이들 모두의 평균을 내면 결국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유불리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내 삶의 만족도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졌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만약 후회로 땅을 치던 사람이 우주를 넘나들 수 있는 기계를 타고 다른 우주로 가 본다면, 그가 보는 것은 거기서 땅을 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후회는 1초라도 빨리 그만 두는 게 상책이다. 후회를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 '다를 것'도 없기 때문이다. 후회는 심리학 용어로 반추(rumination)에 가깝다. 끊임없이 지난 일을 떠올리며 부정적으로 곱씹는 것인데, 정신적 에너지만 소진시키는 순도 100%의 해악이다. 후회나 반추를 멈추기 힘들 때에는 '저 길'에서 살고 있는 나와 '이 길'을 걷는 내 삶의 모양새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좀더 수월하게 놓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