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좋다. 가벼운 차림으로 집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외국 나가는데 이렇게 짐이 가볍기는 처음이다. 하긴,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니 캐리어도 필요가 없다. 백팩에 속옷 몇 별과 필기구, 책 두어 권이 끝이다.
본격적인 중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가는 길에 북경에서 하룻밤 체류해 본 것이 전부였다. 3 •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장소를 둘러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담장으로는 장미가 예쁘게 늘어섰다. 여기서 공항버스를 타면 인천공항 1터미널까지 한 시간 10분정도 걸린다.
평일이라 공항은 비교적 한산했다. 시간 여유를 갖고 출국심사를 받으러 들어섰다. 사람이 도장을 쾅쾅 찍어 주는 심사대 대신 이번에는 '자동출입국심사'를 이용해 본다. 예전에는 사전등록을 한 사람들만 통과할 수 있었지만 2017년부터는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여권을 스캔하고 안쪽으로 들어서서 지문과 안면인식을 하면 끝난다.
저가로 티켓을 구매한 탓인지 제1터미널 중 가장 먼 게이트로 배정되었다. 동행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탑승절차가 20여분 지연되는 동안 창밖의 비행기를 내려다 본다.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 우선 시내로 들어가는 자기부상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한다. 초등학생때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를 처음 들었다. 이제야 그 열차를 실제로 타본다.
우리나라에도 자기부상열차는 있다. 인천공항에서 인근 지역을 잇는 노선이 2016년 개통되었다. 하지만 이동 거리는 6.1km, 최고시속은 110km/h에 불과한 '미니' 자기부상 열차다. 반면 푸동공항에서 롱양루역을 잇는 자기부상열차는 운행거리가 33km, 최고시속이 431km/h에 달한다. 2002년에 개통되었는데 상업적 상용화로는 세계 최초다.
영어로 'Maglev'라 쓰여있는 표지가 자기부상열차를 뜻한다.
푸동공항을 출발해 롱양루역까지는 8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출발 후 서서히 속도를 올리다가 최고시속 430km/h 상태에서 대략 50초 내외를 달린 후 다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 50초 동안에만도 6km가량 달리는 셈이다. 진동과 소음은 KTX와 비슷하거나 약간 덜하다.
돌아오는 날 롱양루에서 푸동공항으로 가는 자기부상열차 안에서. 최고속도로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순간까지를 담았다.
자기부상 열차에서 내리면 일반 지하철역으로 이동해 다시 표를 끊어야 한다. 내겐 사흘짜리(72시간 사용 가능) 자유이용권이 유용했다. 역무원은 'three days' 한 마디만 알아 들었다. 하긴, 처음부터 그 이상 영어를 꺼내지도 않았다. 중국인들과 영어로 소통하기는 정말 어렵다.
상하이 지하철은 17호선까지 있어 어지간한 곳은 지하철로 다 다닐 수 있다. 시설도 깨끗하다. 지하철 내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손잡이마다 광고판이 달린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플랫폼의 전광판은 우리나라보다 열차의 운행 상황을 더 자세히 알려준다. 다음 열차가 현재 어디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과 함께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 초 단위로 표시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이러한 시스템은 도로의 신호등에도 적용되어 있다. 예컨대 파란 불에서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는 앞으로 몇 초 남았다는 숫자가 함께 표시된다. 대기중인 빨간 불에도 몇 초 후면 파란 불로 바뀐다는 숫자가 뜬다.
예측 가능성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그에 맞춰 행동을 계획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높을 때 무리와 사고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201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도 남은 시간이 표시되는 신호등을 본 적이 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상하이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에도 적극 도입할 만한 시스템이다.
암스테르담의 신호등이다. 빨간 불이 앞으로 몇 초 남았다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촬영 : 2016년 12월 14일)
숙소는 중산공원 인근 펜타호텔로 잡았다. 낯선 곳에 도착하면 일단은 보금자리부터 챙겨야 마음이 편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인근 중산공원으로 나섰다.
'중산'은 쑨원(손문孫文)의 호다. 신해혁명(1912년)으로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웠던 혁명가다. 중화민국이 군벌에 의해 무너진 후에는 국민당을 창설했고, 군벌과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공산당과 제1차 국공합작을 이뤘다. 국공 내전을 벌였던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그의 이름을 딴 '중산공원'은 상하이를 비롯해 베이징, 다롄, 대만 등지에 여럿 조성되어 있다.
쑨원(1866 ~ 1925) (사진출처 : 위키백과)
어디서나 그렇듯 낮시간의 공원은 대개 어르신들의 놀이터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보지 못한 중국 노인들의 여흥이 눈에 띈다. 물로 글씨를 적는 거리의 서예가들이다.
위 사진 어르신의 글씨는 초서, 아래는 행서와 해서의 중간쯤으로 보인다. 아이가 자신이 알아본 글자를 발로 가리키고 있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 문득, 서예의 매력은 '기호의 자의성'이 붕괴되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학에 의하면 우리가 '사과'라고 할 때, 글자로 쓴 '사과'를 '기표'라 부른다. 또한 그 기표가 의미하는 바, 즉 빨갛고 동그란 열매를 '기의'라 한다. 그런데 이 열매를 한글로는 '사과', 영어로는 'apple'이라 쓴다. 즉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이를 '기호의 자의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서예는 그 글자(기표) 자체에 글자가 의미하는 바(기의)의 느낌을 담을 수가 있다. 예컨대 용감함을 듯하는 '용(勇)'자를 쓸 때에 획의 굵기와 삐침을 잘 이용하면 글자 자체에서 정말 뭔가 용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서예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공원 안쪽에는 중국식 해금인 얼후로 버스킹을 하는 어른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장기를 두는 분들이 있다.
중국식 장기는 '샹치(象棋)'라 부르는데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의 장기와 조금 차이가 있다. 장기판 가운데에는 강이 흐르고, 기물의 글자도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다.(물론 게임의 룰도 약간씩 다르다.) 예컨대 우리나라 장기에서 '왕'은 각각 '한(漢)'과 '초(楚)'인데 여기서는 '장수(將帥)'의 두 글자를 '將'과 '帥'로 떼어 각 진영의 왕으로 삼고 있다. 공산주의 평등성의 반영인지, 왕부터 졸까지 기물의 크기에 차이가 없다.
저녁은 지인을 만나 인근 상가 지하에서 먹었다. 길거리에서 식당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중국의 식당은 대개 건물의 지하층이나 특정 공간에 모여있다.
중국인들은 하나의 요리로 식사하기보다는 육류와물고기, 국물과 면요리 식으로 여러 가지를 차려 놓고 먹는 것을 선호한다. 나도 중국식 만두인 '샤오롱바오'와 이름 모를 면요리를 함께 먹어 본다.
샤오롱바오 안에는 뜨거운 육즙이 차 있어 갑자기 베어 물면 데일 수가 있다. 앞니로 표면에 구멍을 뚫고 육즙부터 살살 빨아 먹는데그 맛이 일품이다. 당면같은 면의 국물요리는 처음 경험해 보는 특이한 맛이다. 우리가 흔히 국물요리에서 기대하는 '깊은 맛'은 덜하다.
식사를 마치고 정안사(静安寺)를 찾았다. 3세기에 건립된 유서깊은 사찰이지만 태평천국의 난, 중국의 문화혁명 등을 거치면서 파괴되었고 1990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방 시간이 오후 5시까지라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절의 입지 자체가 흥미롭다. 주변의 화려한 상가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으로는 사찰이, 한쪽으로는 거대한 쇼핑센터가 서로 마주본다.
우리나라의 유명 사찰은 산 속에 들어앉은 경우가 많다. 이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의 결과다. 고려시대까지 절은 지금의 교회처럼 어디에든 있었다. 그러다 불교가 탄압받으면서 산 속의 절만 살아 남거나 도시의 사찰도 산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난징시루(南京西路)로 이동한다. 여기에는 축구장 반만한 규모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었으나 올 2월에 도쿄에 더 큰 매장이 열리면서 세계 최고 타이틀은 내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하이 관광객의 필수 코스다.
내부에는 커피를 볶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을 포함해 스타벅스 로스터리 매장은 세계에 다섯 곳이 있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다양하고, 매장 안에 기념품샵이 있는 점도 특이하다.
스타벅스와 이어져 있는 건물의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와 피자를 주문했다. 상하이는 한국보다 기온이 다소 높은 편이다. 선선한 저녁 공기는 야외에 앉아 여유를 즐기기에 딱 좋았다.
숙소로 돌아와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매대에 소주와 과자 등 우리나라 제품이 눈에 띈다. 물 두 통과 맥주, 면도기를 들고 카드를 내미니 카드 결제는 안 된다고 한다. 현금을 적당히 환전해 가지 않았더라면 여러모로 불편할 뻔 했다.
이날 지하철 3일권을 살 때에도, 다음날 마라롱샤를 먹을 때에도 카드를 사용하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알리페이, 위쳇페이를 이용해 QR코드로 계산을 한다. 택시요금을 낼 때에도 택시 안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바로 송금하는 식이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조차 QR코드를 이용한다니, 이런 면에서는 중국의 스마트 기술이 우리보다 앞선 듯하다.
물론 이러한 추세가 반드시 편리함만 주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의 경우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현금을 사용하는데, 위조지폐가 많아 현금 받기를 꺼리는 탓에 노인들이 결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참고 기사 : <"현금 안 받는다"... 중국 노인들, 모바일 결제 봉변> 조선일보 2019. 04. 29.)
사진 : YTN
숙소로 올라와 오늘 일정을 정리한다. 상하이에 무사히 도착하고 지인을 만난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는 내일 찾아갈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유적과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루쉰공원이다. 침대에 누워 관련 자료들을 간단히 읽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