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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說] 정겨운 문화는 오래오래

by 김정환


지금은 보기 힘든 1990년대(혹은 그 전부터 있었던) 문화 두 가지. 하나는 ‘가방 받아주기’다. 가방이나 큰 짐을 든 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서 있으면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 ‘가방 주세요’ 하며 자기 무릎 위에 얹어 놓곤 했다. 마음은 조금 불편해도 거절 못할 교감과 온기가 있었다.


또 하나는 ‘차선 바꾸고 손 인사하기’다. 요샌 비상 깜빡이 두어 번으로 인사를 대신하지만(그마저도 하지 않는 운전자가 태반이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차 유리가 시커멓게 코팅되어 있지 않아 오른손을 들어 뒷차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이런 손 인사의 감성에 비하면, 깜빡이는 아무래도 온기가 덜하다.


30대 이하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도 문화는 이토록 빨리 변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정겨움(그래서 얼마나 정겨운 것인지도 못느끼는)도 머지 않은 미래 에는 전설처럼 남을 것이다.


그럴 만한 후보 중 하나가 ‘카페에서 소지품 놓고 다니기’다. 커피를 주문하러, 혹은 화장실에 다녀올 때 테이블에 스마트폰이나 소지품을 놓고 다니는 건 우리나라니까 가능한 일이다.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한국 문화가 이것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물건을 놓고 자리를 비우는 건 기부행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점차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K양심'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를 일이다.


또 하나는 '감자튀김 같이 먹기'다. 햄버거 세트에 딸려 오는 감자튀김을 한 군데 쌓아 놓고 먹는 풍경이, 개인주의에 철저한 외국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최소한 상대방 가까이에 감자를 쏟는 제스처에는 뭔가 정겨운 데가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발달할수록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은 더 선명해질 터, 언젠가는 네 감자와 내 감자도 각자의 트레이 안에서 식어갈 것이다.


물론 예전에 없던 훈훈함이 생겨나기도 한다. 집회 현장처럼 사람들이 뜻으로 모이는 자리에 '선결제'로 마음을 더하거나 착한 자영업자의 미담을 들으면 떼로 몰려가 '돈쭐'을 내 주기도 한다. 정보화 시대의 미담이다. 예나 지금이나 훈훈함이 있어 세상은 살만하다. 그저, 내게 익숙한 온기들은 천천히 식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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