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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의 '주' 자도 모르면서

by 어슴푸레
제주반도체 7,300원입니다.
정리하실 거면 오늘 하시는 것도 괜춘.


오전 11시 25분.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올~ 감사. 들어가 보겠음." 급히 답을 하고 증권 앱을 켰다. 한참 헤매다 클릭한 '마이 계좌.' 때마다 시퍼런 수익률에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안 본 눈 삽니다."


7,250원부터 쭉쭉쭉쭉 무섭게 올랐다. 어디 보자. 내가 얼마에 샀더라. 어우, 7,200원. 반토막 났던 원금을 보전하는 날이 바로 오늘인가! 7,250원이 7,270원이 되는 순간, 과감히 매도 버튼을 누르고 '7,310원'을 희망가로 적었다. 7,300원이 눈앞인데 10원 더 올린다고 안 팔릴까 싶었다. 한가롭게 '장대 양봉' 따위 확인할 시간이 어딨어. 지금이야. 라잇 나우.


팔려라, 팔려라, 팔려라.


'띵똥.' 바람대로 20초도 안 지나 177주가 7,310원에 시원하게 팔렸다. 팔고 나면 더 이상 들여다보지 말랬는데 더 오르나 싶어 앱을 도로 켰다. 어랏? 7,170원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휴, 십년감수했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이전 종가. 와, 하루 사이에 1,000원이나 올랐었구나. 천우신조가 따로 없군.


2021년 봄, 주식의 '주' 자도 모르면서 그래도 한번 해 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증권 계좌를 하나 텄다. 처음엔 시험 삼아 몇십만 원씩 소액을 사, 다 해 봐야 10주도 안 됐다. 그러던 것이 쪼금쪼금 수익이 나면서 수익만 털어 고기도 사 먹고, 소소한 외식도 하면서 '주식 하는 재미'를 알았다. 순전히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래프나 캔들이라도 좀 볼 줄 알았어야 했다. 언제나처럼 과욕은 더 큰 화를 부른다.


그해 11월, 가족들 거 말고 갖고 싶은 거 사라고 남편이 50만 원을 주었다. 부인 생각해서 연말 보너스의 일부를 떼 선물한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내 두 배로 불려 주겠노라 큰소리쳤다. 유명 주식 애널리스트의 '호가 전망 리스트'를 보고 용한 점괘인 양 최고점에서 잡은 것이 바로 문제의 '제주반도체'였다. 결과는 처참했다("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와 같은 개미분들 손 좀 들어 보세요. 으헝헝.)


가끔씩 남편이 수익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었다. "그 입 다물라, 다물라, 다물라. 제주반도체는 금기어니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라."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날들이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에휴. 봐 봐야 한숨만 나왔다. 올라는 올 건지 원. 심심하면 한 번씩 남편이 말했다. "오늘 제주반도체 많이 올랐던데." "흠. 7,000원 안 되면 내 앞에서 말도 꺼내지도 마."


7,310원 177주 전액 매도에 성공했다고 남편에게 톡을 보내니 답장이 왔다. "오늘부로 '제주반도체', 나도 관심 종목에서 빼 버려야겠다."


그대의 오랜 맘고생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바이니
수익률로 오늘 저녁 치맥 어떠시오(초롱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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