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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JH가 누구야

by 어슴푸레
어? 왜 서방님이 둘이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내 말에 작은애가 부리나케 달려와 카톡 친구 목록을 확인했다. 왼쪽에 새로 뜬, 하늘색의 서방님엔 프로필 사진이 걸려 있지 않았다. 작은애가 도끼눈을 하고 말했다.


"엄마. 솔직히 말해. 어제 누구랑 술 마셨어?"

"옛날에 같이 일한 이모들이라고 했잖아. 자, 봐!"


단톡방을 열어 샘들과 공유한 사진과 대화 내용을 확인시켜 줬다. 그래도 못 미더운지 내 휴대폰 화면을 캡처해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은 작은애에게 지금 통화가 불가능하니 이따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작은애는 친구 목록에 새로 추가되었다는 건, 적어도 하루이틀 전에 내 손으로 직접 저쪽 번호를 저장해야 뜨는 거라며 대체 누구냐고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 명절 내내 가족과 함께 있었고, 요 며칠 학술지 편집 간사 일로 몇몇 교수님께 전화드리기는 했어도 따로 번호를 저장하진 않았으며, 내 평생 아빠 말고 '서방님'으로 핸드폰에 입력한 이는 없다고 했다. 작은애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이나 하자. 안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카카오톡 피시 버전에 로그인하자 새 친구 목록에 'JH'가 떴다. 어? 이 사람이 서방님? 그 말을 놓칠 리 없는 작은애가 방으로 들어와 무릎에 앉았다. 내 휴드폰을 들고 '문제의 하늘색 서방님'을 다시 클릭했다.

"이거 봐, 이거 봐. JH가 누구야? 엄마가 JH를 서방님이라고 저장한 거잖아!"

"하. 진짜. 아니라니까 그러네. 몰라 나는. 기억 안 나."


작은애는 노트북에 창을 하나 더 띄워 "JH 뜻"을 치고 구글링을 했다. 속이 터졌다. 그런데.... 어라? 이거 뭥미?


소오름.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댓글에 '준현'부터 '정훈'까지 남자 이름 다섯 개가 댓글로 줄줄이 달려 있었다. 작은애가 재차 물었다. 그래서 누구냐고 JH가? ㅜ.ㅜ


30분쯤 지나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남편과 작은애가 한참 통화를 하고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과거, 사귀었던 남자 중에 이니셜이 JH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싸이월드를 해킹당한 이후로 휴대폰 번호를 급히 바꿨고 그러면서 그저 그런 관계들은 자연스레 정리됐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가 한창 유행일 때도 전혀 관심이 안 간 건 싸이월드 해킹 영향이 가장 컸다. 20년도 더 지난 과거 인연들을 현생에 다시 불러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끔 궁금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 뒤, 나의 진짜 서방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장난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JH가 누군데? 솔직히 말해 봐. 그 사람도 과거에 서방님이라고 저장했던 건 아니고? 잘 기억해 봐. 괜찮아.


아오. 끙. 없던 병도 생기겠네.

엄마 건다 내가. 목숨 건다 내가.
나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오늘 아침, 출근한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이거슨 돌림노래인가. JH가 또 소환되었다.


카톡 친구 추가 업데이트의 구조를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누명은 벗었다. 남편은 내게 고민을 덜어 주었다지만. 흠. 고민 안 했거든요? 쳇!


남편 말로는 내 휴대폰에 남편의 회사폰 번호가 저장돼 있어서 자동 친구 추가가 된 것 같다는데, 내내 가만 있다 왜 갑자기 친구 추가가 된 것인지. 더군다나 전혀 저장하거나 수정한 기억이 없는 '하늘색 서방님'은 어떻게 떡하니 나타난 것인지 아직도 미스터리.


얼굴도 모르는 JH가 애먼 사람 잡을 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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