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어 공기와 냄새가 전혀 다른 곳에 덩그러니 따로 떨어져 나온 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지 못하지만 콩이와 다람이를 낳고 어렴풋이 느꼈다. 두 눈을 꽉 감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으엥 으엥 하고 우는 갓난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스러운 거구나, 두려운 거구나 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지 않은 날이 없다. 신혼 초 남편이 A형 간염에 걸려 일주일 넘게 입원하고 퇴원한 날. 그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장마철. 비바람은 몰아쳤고 차가 없던 그때. 신촌 세브란스에서 672를 타고 병원 짐을 이고 지고 집에 왔다. 남편의 흰자위는 더 이상 요오드 용액처럼 샛노랗지 않았지만 옅은 미색이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남편이 침대에 누운 사이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장을 보러 갔다. 잡채거리, 미역, 소고기, 산적거리, 콩나물, 가지, 시금치, 쪽파, 오징어, 불고깃감, 애호박, 조기, 꼬막, 떡을 장바구니에 불룩이 담고 작은 케이크 하나를 더 샀다. 결혼 후 첫 생일이니까 꼭 내 손으로 따뜻한 생일 밥을 지어 주고 싶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6시 반까지 오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플 땐 생일 하는 거 아니다. 하셨지만 퇴원도 했고 앞으론 더 건강하자고 차리는 상이니 꼭 오시라고 했다. '일만 하다' 시집온 며느리의 음식 솜씨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두 분은 우리만 먹기 너무 아깝다고 부천 작은아버지나 큰이모님을 부를 걸 그랬다고 하셨다. 고맙다. 잘 먹었다. 애썼다. 서너 시간 동안 부엌에 있었지만 힘들거나 귀찮지 않았다. 생일이니까. 생일만큼은 따뜻한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지식한 면이 없지 않았다. 매번 미역국을 끓여 시부모님을 초대해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는 건. 큰애를 낳고 두 달이 채 안 되었을 때도 음식을 해서 바리바리 시댁에 가져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두 분께 1년에 그 정도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십수 년째 음식하는 며느리가 안됐는지 이번 생일엔 나가서 먹자고 하셨다. 점심에 맛있는 것으로. 그래서 두 분이 좋아할 만한 한정식집을 예약해 미리 지난 주말에 아이들과 다녀왔다. 저녁엔 본가에서 케이크에 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다.
그래도 진짜 생일은 오늘인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전부터 음식할 여건이 안 되었으므로 전날 저녁 부지런을 떨었다. 미역을 불리고 소고기를 물에 담가 핏물을 뺐다. 마늘을 쓸 만큼만 다지고 채소들을 다듬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크레미팽이버섯전과 애호박전을 부치고 잡채를 하고 부추나물을 무쳤다. 맵지 않게 제육볶음을 하고 참외를 깎아 씨를 긁어 내어 먹기 좋게 잘랐다. 남편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밥솥에 쌀을 안쳤다.
삑삑삑삑 삑삑삑삑. 아빠 다녀오셨어요. 왔어? 고생 많았어. 잡채와 제육볶음을 가스 불을 켜서 데우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와 이게 다 뭐야. 미역국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래. 우리 남편 세상에 나온 날인데. 어서 손 씻고 와.
으 배부르다. 잘 먹었어요. 남편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흡족했다. 남편이 평생 건강하게, 내가 해 준 밥을 오래오래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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