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슴푸레 Feb 01. 2024

줌 회의를 하다 보면

  언제부턴가 줌 회의에서 카메라를 끄고 있다. 출석이나 시험을 위해 카메라를 켜야 하는 대학원 수업이 모두 끝난 후로 카메라 저 뒤쪽에 숨어 관찰하듯 회의를 지켜본다. 그러면서 열심히 워드로 속기한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들리는 대로 메모장에 기록한다. 그러나 알아는 볼 수 있게 엔터를 꼭꼭 친다.


  온라인 회의도 오프라인 회의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확실히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표정, 말투, 태도, 복장은 오프라인 회의보다 자유롭다. 매사에 30%쯤 긴장하고 사는 나로서는 줌 회의 화면 뒤쪽에서마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박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 선생님 알고 계신 거 있으면 말해 주실 수 있어요? 넋 놓고 있다 이름이 호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마냥 편하고 자유롭게 앉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더 부산하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열심히 속기를 하고 있기에.


  그럼에도 카메라 때가 있다. 오래 못 본 가족이나 지인들을 만날 때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던 2020-2021년엔 엄마의 칠순 잔치마저 줌으로 했다. 아이들이 아파 추석에 못 내려갈 때도 줌을 열어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카메라는 나를 온전히 드러낼 준비가 돼 있거나 그럴 의향이 있을 때에만 켰다.


  학술 대회, 토론회, 소회의, 강연회 등. 나의 존재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줌 회의에서는 카메라 켜는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켜고 적극적인 눈빛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저분은 나와 목소리 톤이 비슷하네. 저분은 말할 때 저런 추임새를 넣는구나. 저분은 긴장하면 나처럼 눈을 파르르 떠는구나. 한 분 한 분 살피며 하나하나 기억했다.


  온라인 회의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안다.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그래도 되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도. 채널이 다를 뿐 공적인 회의인 데에는 변함이 없으니. 적어도 내게 줌 회의에서 카메라를 켜는 날은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남이 나를 살펴도 크게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 두둑한 자신감은 안에서부터 채워지는 것이라고 오늘 줌 회의에서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