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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Jan 31. 2024

나는 다이소가 불편하다

  없는 게 없는 가성비의 끝판왕 다이소. 식기, 청소용품에서 간식, 화장품까지 판매 영역을 넓히더니 급기야 의류까지 평정했다. 작년 연말 5천 원짜리 플리스 집업이 계산대 근처에 걸려 있는 걸 보고 이젠 뭐 전방위구나 했다. 박리다매가 운영 목표인가 싶게 가격도 착해. 시즌에 착착 맞춰 귀염뽀짝 에디션을 쉬지 않고 만들어 내. 구경 삼아 들어갔다가 뭐라도 들고 나오게 만드는 참으로 영리한 전략이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물건값에 이것저것 담다 보면 만 원이 금세 훌쩍. 이 가격에 이렇게나 많이? 음하하하. 난 역시 합리적 쇼핑러야. 오늘도 만족스럽다.


  총천연색 플라스틱 일색이던 다이소 물건들은 무채색이 많아지더니 파스텔톤으로 갈아다. 이력서나 편지봉투 정도였던 문구용품은 마스킹 테이프, 포토 카드 꾸미기용 슬리브와 탑로더까지 날이 다르게 디테일해졌다. 매장에선 신상을 구경하는 삼삼오오 학생들이 심심찮게 목격되고 유동 인구가 많은 명동, 신촌 등엔 3층이 넘는 다이소가 위풍당당 서 있다. 층마다 카테고리별로 정리돼 있는 제품들은 나 좀 데려가 주세요. 저마다 아우성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화려 쨍쨍 색깔들로 존재감 뿜뿜이다.


  조악했던 조화나 식물들은 이제 제법 실물 같다. 밋밋한 식탁에 포인트 주기  좋게 적당히 괜춘하다. 소재 면에서 모던 하우스보다 덜해도 가성비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나는 이 점이 불편하다.

값싼 원료에 값싼 염료를 넣고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제품들이
썩기는 할까 싶어.
값싼 물건을 손으로 지속적으로 만지고
몸에 사용하는 게
좋을 리가 있나 싶어.


  엄마의 양품점이 폐업하고 채 팔리지 못한 물건들이 포대 자루에 불룩하게 담겼다. 누굴 주기도 뭐하고 버리기도 뭐한 철 지난 재고용품들이었다. 그중엔 밤이면 연두색으로 빛나던 야광 그리스도 액자도 있었고, 인기가 떨어진 소방차나 김완선의 사진 엽서도 있었다. 겉면이 금색으로 도금되어 중앙에 꽃 모양으로 큐빅이 박힌 유리컵 세트도 있었고, 산화되어 녹이 슨 넥타이핀도 있었다. 500원씩이라도 받고 점포 정리를 하자고 했지만 유행 지나 먼지 쌓인 물건들을 사는 이는 없었다.


  싸니까. 예쁘니까. 얼마 안 하니까. 봄이니까. 크리스마스니까. 가볍고 산뜻한 이유로 때마다 사들인 다이소 물건들은 해가 바뀌면 종량제 봉투에 담겨 강제 추방 되었다. 다 팔리지 못한 제품들도 어쩌면 비슷하게 처리되었을 거였다. 다이소에 진열되어 있는 온갖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심란한 마음이 든다. 어휴, 저걸 다 어째 한다.


너무 많은 물건들이
너무 밭게 진열됐다
사라지는 것이 나는 몹시 불편하다.

#다이소#가성비와환경의사이#진정한합리적소비는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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