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는 모임에 나갔다. 1월의 '문화지평' 답사 코스가 개화산 둘레길이라는 말에 동네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신청했다. 국제 청소년 센터 왼쪽에 큰 나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나무가 조선 시대의 정승인 심정이 심었고, 그래서 두 나무의 나이가 400살이 넘었고, 또 그래서 보호수라는 건 이날 알았다. 그저 두 나무가 있는 느티공원을, 하교한 인근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사시사철 재잘거리고 노는 볕 좋은 곳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김포에 장릉을 쓰기 전, 원종(인조의 아버지)의 능 후보지로 삼았을 만큼 이곳이명당이라는 걸나는전혀알지 못했다.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샘들과 점심이나 술을 먹으러 갔던 '능마루'의 '능'이 왕이나 왕후의 무덤을 뜻하는 '능(陵)'이니, '능마루'의 뜻은 '능이 있던 마루(언덕)에 지은 음식점'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이 일대는 과거 능리(능말/능마을)로 불리던 곳으로 풍산 심씨의 집성촌이었다고 했다.
삼정초등학교 담벼락을 끼고 걸으니 개화산 둘레길이 나타났다. 이 길은 거의 처음이었다. 5분쯤 걸었을까. 오른쪽에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이 나왔다. 묘를 지키는 두 개의 문인석은 거칠고도 단단했다. 놀랍게도 조선 시대의 양식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화강암엔 굵은 선으로 새긴 옷자락이 가지런했다. 위아래로 심씨의 묘가 넓게 이어져 있었다. 심정과 조광조, 사림에 대한 설명은 드라마틱했다.개화산 근처에 심씨의 묘가 유독 많은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심정의 묫자리에선 그가 심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앞으로보이고 개화산이 뒤로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과연 명당이었다.
이후 약사사로 이동했다. 매해 초파일이면 강서 양천구의 주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화려한 절. 반면에 한겨울 약사사는 한갓졌다. 큰스님의 염불과 게송만이 경내에 가득했다. 고려 후기에 지어졌다는 약사사 삼층 석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탑돌이를 했다.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 고민하다가 그만 거꾸로 돌았다. 방향은 중요하지 않았다. 기도만이 중요했다. 합장을 하고 세 바퀴를 돌았다. 건강만을 빌었다. 양가 부모님의 건강, 선생님의 건강, 우리 네 식구의 건강. 그중에서 일주일 전부터 어지럼증과 잦은 구토 증세로 편찮으신 시어머니. 오랜 지병으로 한 번씩 크게 앓으시는 조찬용 선생님. 만성이 된 대장 질환으로 아직도 고생 중인 남편의 건강이 가장 컸다. 한 바퀴에 한 명씩. 간절히 빌었다.
개화산 전망대에 올라 방화대교와 행주산성,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날이 맑아 제법 멀리까지 보였다. 봄이 오는 게 느껴졌지만 코끝은 아직 차가웠다. 시린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봉수대에 갔다. 조선 시대의 봉화 체계에 대해 설명을 듣고 봉화정을 지나 아라뱃길 전망대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에 정박해 있는 주황 컨테이너선을 멍하니 응시했다. 신선바위를 지나는데 누군가 감흥이 없어. 했다. 아담한 것은 감흥과 거리가 있나? 하다가 난 오히려 좋은데? 했다. 어렵지 않고 높지 않고 단순치 않고 숨차지 않은 산. 개화산이 좋은 이유였다.
데크 계단을 지나 호국공원에 내려갔다. 다섯 개의 꽃잎이 하나로 뭉쳐진 높고 흰 꽃은 무궁화를 상징하고 있었다. 6.25 전쟁 당시 개화산은 남북한 격전지였다고 했다. 1100명이 넘는 군인들이 전사했다고 했다. 전쟁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호국충혼위령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올렸다. 한자를 읽는 사람이 많을까, 못 읽는 사람이 많을까. 왜 기념비는 죄다 한자로 되어 있는가. 누군가 위엄보다 중요한 건 국민에게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한자가 아닌 한글로 써야 한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봤다는 게 놀랍고 부끄러웠다.
더 내려가 아무 단청도 없는 미타사를 둘러봤다. 6.25 전쟁 때 전소된 것을 다시 지은 거라고 했다. 가정집처럼 소박했다. 솔송으로 둘러싸인 언덕에 미타사 석불 입상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늘어진 두 귀는 멀리서 보면 단발머리 같았다. 발길을 돌려 산을 올랐다. 흙길과 데크길과 돌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타났다. 부지런히 데크 계단을 올라 하늘길 전망대에 올랐다. 너른 김포평야의 오른쪽으로 마침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잠깐 생각이 머물렀다. 난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
무장애숲길을 걷다 오른쪽으로 빠졌다. 인공 연못 아래로 좁은 수로가 길게 이어졌다. 날이 추워 연못은 얼어붙었고 수로엔 물이 없어 흐르지 않았다. 봄꽃이 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여름이면 물에 발을 담그고, 가을이면 낙엽을 줍고 봄이면 봄바람을 느끼며 사진 찍던 시냇가가 몹시 그리웠다.
산길을 내려와 근린공원에 도착했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여정이었다. 128m밖에 안 되는 개화산에 문화재가 네 개나 있다는 걸 그전엔 미처 몰랐다.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 약사사 삼층 석탑, 약사사 석조 여래 입상, 미타사 석불 입상'이 개화산 도처에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