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두레(상호 대차 서비스)로 신청한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어쩐 일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핸드폰 앱을 열어 서울시민카드 바코드를 스캐너에 댔다. 사서 선생님이 책을 찾아 내게 건네며 조용히말했다.
"도서관 17주년 행사가 있어 떡을 했는데요. 괜찮으시면 드릴까요?"
"아. 네! 주세요."
"여기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호박설기에는 아직 따뜻한 기가 남아 있었다. 바보. 축하한다는 말부터 했었어야지. 문을 열고 나올 때쯤 아차!싶었다.
랩에 싸인 떡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그동안 맞추고 나눈 떡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신혼집에 가구 들이던 날, 갓 뽑아 아파트 위아래층에 돌리던 팥시루떡.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일이 인사하며 원에 돌리던 모둠찰떡과 바람떡. 애들 백일과 돌날 넉넉히 해서 상에 괴고 소포장하던 백설기와 송편과 수수팥떡. 그때마다 늘 같은 마음이었다. 앞으로 탈 없이 두루두루 잘되고 복되기를 바라는마음. 삶의 중요한 시기를 지날 때마다 기도하는 맘으로 떡을 했다.
엄마의 마음도 그랬을 거였다. 매해 내 생일날 아침. 엄마는 뜨거운 물을 찹쌀가루에 부어 익반죽을 했다. 반죽을 떼서 왼손과 오른손으로 분주히 굴리면 새알심이 흰 구슬처럼 만들어졌다. 팥고물과 카스텔라 가루 옷을 입은 엄마표 경단은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웠다. 잔병치레 없이 쭉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 마음은 새언니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거였다. 시집가는 딸자식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결혼식이 끝나고 오빠와 언니가 신혼여행을 떠난 날, 2층 베란다에는 이바지 음식이 한 무더기를 이뤘다. 낙지호롱, 육포, 인삼튀김, 표고버섯전, 육전이 석작마다 그득했지만 그중에서도 흰 가루에 눈처럼 소복히 덮인 떡이 단연 눈에 띄었다. 그 떡은 두텁떡이라고 했다. 과연 말처럼 두툼했다. 부드러우면서 고소하고 쌉싸름하면서 달콤했다. 켜켜이 쌓인 두텁떡은 제일 먼저 동이 났다.
같은 마음으로 떡케이크를 맞췄다. 양가 어른의 칠순 날이었다. 증편과 찹쌀떡과 만주와 설기와 찰떡으로 단을 올리기도 하고,딸기설기에 앙금으로 꽃 장식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엄마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항상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고 걱정 없이 사셨으면 하는 마음. 자식 된 마음은 부모 된 마음과 다른 듯 같았다. 떡이 잔치에 빠지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도서관에서 준 떡을 먹으니 도서관 선생님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곳 방화동에서 어린이 도서관의 역할을 하느라 오롯이 애쓴 17년의 수고와 벅찬 기쁨을.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라는 희망의 마음을.
다음에 책 반납하러 갈 땐 떡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늦었지만축하드린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말고.